갈라디아서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를 주는 순전한 복음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참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는 것, 유사 복음과 다른 복음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것, 그래서 성도들이 다른 복음에 빠지지 않고 따라가지 않는 것이 갈라디아서의 큰 주제이며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매우 중요한 복음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된 복음을 계속 알고 그 순전한 복음 위에 굳게 서기 위해선 말씀을 기준으로 다른 복음과 유사 복음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순전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인생을 걸고 이방 사람들을 복음으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새생명을 전하는데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유함으로 어떤 조건도 자격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방 땅에 수많은 회심자들이 나오며 수많은 새생명들이 태어나 예수 복음을 따르는 신자가 되었는데 문제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초대교회는 유대교 방식으로 복음을 믿어야 한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복음으로 주신 참 자유를 누리는 대신 거기에 율법이라는 큰 짐을 이방 회심자들에게 지우려 하는 다른 복음, 유사복음에 젖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회심하여 모든 것이 변한 후에 여러 번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올라오는 예루살렘에 올라온 목적은 바로 이 순전한 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더 정확히 하며 사도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해결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문제가 갈라디아 교회뿐 아니라 이방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에 혼자 올라온 것이 아니라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올라왔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붙들고 내가 나의 인생을 드리면 충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가운데 전해졌는데, 거기에 자꾸 유대인의 방식인 할례를 받게 하거나 안식일을 지키게 하는 이런 짐들을 계속 지우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 말은 헬라인에게 즉 이방인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 기독교인들은 디도와 같은 이방 회심자들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려 압박하는데, 할례를 받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것을 디도를 함께 데려옴으로서 증거하는 겁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이기 때문에 외적으로 유대인 방식의 할례를 받지 않아도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항상 가짜는 가만히 들어오고 다른 복음은 유사 복음도, 이단과 사이비도 가만히 들어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분명히 알곡만 심었는데 자고 나니까 가만히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 예수 복음을 부정하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해 분명히 고백합니다. 문제는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방식으로 믿어야 된다는 것이죠.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이렇게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많았든 것입니다. 특별히 이방 회심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녀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거니까 당연히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준수해 된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며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압박하며 억지로 할례를 받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하나로 충분한데 그 충분한 구원 대신에 자꾸 유대인 방식으로 믿으라고 이방인들을 압박하는 겁니다. 문화적으로 유대인의 방식으로 믿어야 된다고 이렇게 압력을 주는 거짓 형제들, 이게 갈라디아 교회에는 매우 중요한 도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어와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흔들며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율법의 요구를 구원의 조건으로 만드는 이런 일들이 가만히 들어온 유사 복음이고 가짜 복음이라는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오직 단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이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복음을 주셨는데, 이 순전한 복음을 내려놓고 종과 같이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고 다른 복음으로 성도들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믿음의 열심과 믿음의 정성이 아니라 바로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내용이 나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열심이 있고 얼마나 정성을 가지고 헌신하는가는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고요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 열심과 헌신이 누구를 향한 믿음인가? 그 믿음의 대상과 내용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주신 복음은 뭡니까? 우리의 믿음과 믿음의 대상과 내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게 복음의 진리 핵심입니다. 그 복음의 진리에 정확하게 붙들려 있어서 어떤 다른 것도 복음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정확하게 믿으며 억지로 다른 짐을 지우면 안된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위해, 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자유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임을 증언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달음질 한 것과 내가 달음질 할 것이 헛되지 않게 하는 삶을 사모한다고 고백합니다. 과연 나의 인생은 무엇을 위해 달음질 해왔고 달음질 할 것인가…우리에게 찔러 주시는 말씀으로 주시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달려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위해 달려가실 인생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것이 변한 성도라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자라면, 내가 믿는 신념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나를 달려가게 만드는 기준과 운동력이 되길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 인생인가 대한 분명한 해답이 있는 자임을 고백하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온 여정도 앞으로 달려갈 여정도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주신 구원의 자유함을 누리며, 순전한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예수님만 믿고 나의 삶을 경주하겠습니다…. 그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바로 구원받은 자의 자유함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기 위해 다른 복음과 유사 복음에 복종하지 않고 스며들지 않고 경계하고 돌아서야 함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열심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헷갈리지 않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열심이나 겉으로 보이는 행위나 방식이 우리에게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과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근거를 찾고 구원의 근거를 찾는 주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거 외에는 어떤 것도 구원의 자격이나 조건으로 두지 않는 순전한 복음 가운데 우리가 확실히 서 있을 때 바로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나 지금 이 시대에나 계속해서 유사 복음과 다른 복음이 조용히 스며들어 성도들을 미혹하고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참된 복음을 제대로 알고 다른 복음을 구별하고 분별하여 엉뚱한 가짜를 따라가지 않으며 순전한 복음의 진리 가운데서 있기를 사모하십시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이 사도 바울이 달음질 했던 본질이며 저와 여러분들이 달려가야 될 본질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참 자유함의 복음, 그 순전한 복음의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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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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