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시각과 하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현실에 대해서 신랄한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1장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유다와 예루살렘의 참담한 영적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심판의 말씀을 주셨다면 2장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실까에 대한 비전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증언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중요한 단어는 다가올 시간에 대한 단어인 “말일에”…”그날에” 입니다. 말일이란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인데, 마지막 날입니다. 그 날이란 때가 차서 다가오는 D-day입니다. 이 두 단어가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루실 마지막 때에 대한 의미입니다. 마지막 때는 이 세상의 저 끝에 마지막 날을 의미하고 동시에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이 시대 또한 마지막 때이기도 합니다. 저 끝에 다가올 미래로서 마지막 때와 동시에 마지막 때를 지금 살아가고 있는 두 사이를 정확한 긴장감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분명히 언젠가 올 마지막 날임과 동시에 우리는 현재 그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 모호함과 분명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마지막 때에 대한 이중적 의미를 정확하게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말일이 될 때까지 여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 되심을 거절한 채 불순물이 가득한 신앙, 물타기를 계속 하는 신앙으로, 창녀와 같이 겸하여 섬기는 자가 된 그들을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버리신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길이 참으시고 계속 기다리시며 참으시는데, 끝까지 그들을 기다라시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말일이 되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은 멸망하게 되는데 그 이스라엘의 멸망은 결국 하나님의 버리심의 결과라는 게 바로 6절 말씀의 선언입니다. 그들은 동방 풍습이 가득하고 점을 치며 이방인과 언약을 하며 하나님이 내미신 손길을 계속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불순물이 섞이고 물을 탄 신앙 가운데 동방 풍습이 들어오니까 유다와 예루살렘에 은금이 가득하고, 마필과 병거가 가득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실제적 도움과 같은 주변 나라로부터의 돈과 군사력이 가득해진 겁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심을 고백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 세상이 온 겁니다. 그렇기에 동시에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해졌고 죄악도 가득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나의 도움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대신에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을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예배하고, 나에 대한 기념비를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불순물과 물타기가 계속된 신앙은 처음에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지만 결국 하나님을 버리게 되고 우상을 중심에 두게 됩니다. 또한 그 우상을 섬기는 이면의 본질은 하나님 대신 나를 섬기는 것이고 나의 기념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고 다른 이방 우상의 손을 붙은 그들의 손, 불순물과 물타기를 한 혼합주의 신앙의 손을 하나님은 언젠가는 버리신다는 겁니다. 말일에,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돌아오지 않는 자녀들은 버리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지막 때에 심판과 멸망이 임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말일에, 마지막 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자 생명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인 것입니다. 그것이 1-5절까지는 말일에 임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고, 6-10절은 안타까운 심판과 멸망을 경험할 사람들에 대한 말씀인 이유입니다. 심판과 멸망이 임하는 그 말일에 있게 되는 빛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놀라운 역사가 등장합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역사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시온산인 하나님의 산을 향하여 열방들이 놀랍게 몰려드는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겁니다. 여호와의 산에 몰려들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겁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길로 생명과 구원의 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역사가 마지막 때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죽이는 삶에서 살리는 삶으로 나아가는 역사, 빛이 임하는 역사입니다. 무리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는 겁니다. 전쟁 도구인 칼과 창을 녹여서 농기구인 보습이나 낫을 만든다는 겁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역사로 얼룩져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서로 죽이려고 만든 창과 칼이 주도하는 삶에서, 서로 먹여 살리는 보습과 낫이 주도하는 삶으로 변화한다는 겁니다. 마지막 때에 열리는 세상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는 세상이고, 사자가 어린양과 뛰노는 세상이자, 독사의 굴에 아이가 손을 집어넣어도 해가 없는 놀라운 세상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시며 사람들은 그 빛으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함과 모호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중적 의미의 말일, 마지막 때를 분명히 붙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말일에, 마지막 때에 임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이중적 의미를 분명히 붙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야곱 족속인 유다와 예루살렘을 결국 버리십니다. 족속을 버리셨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야곱 족속을 버리신 게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고 배반하여 떠난 겁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빌리면 끝까지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를 거절하고 떠난 겁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렇게 빛과 어둠으로 구원과 심판으로 확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내 안에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 되심을 고백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방 풍속과 우상에 물들게 하는 모든 불순물들을 태우시고 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지금 이 시간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기를 열망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는 놀라운 역사가 있는 마지막 때가 되기 원합니다. 죽이는 삶에서 살리는 삶으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마지막 때가 되기 원합니다. 오직 빛으로 나아가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으시는 예배, 여호와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시는 예배로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역사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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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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