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듣고 그걸 깨달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백성들은 농담으로 여기거나 들을 귀가 없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포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은 때로는 극약 처방을 쓰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극약 처방은 이렇게라도 제발 말씀을 좀 듣고 깨달으라는 경고로 말로 말씀을 선포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벗은 몸과 벗은 발이 바로 하나님의 극약 처방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명하시니 순종해야 하지만, 선지자 이사야 입장에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는 게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일까요? 그런데 이렇게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한 번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3년을 있으라고 이사야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셨다면,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극약 처방으로 벗은 몸과 벗음 발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3년을 다니게 하신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그렇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당하면서 벗은 몸과 벗음 발로 3년을 다니는 극약 처방을 내리신 것일까요? 먼저 벗은 옷과 벗은 발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평등 사회에서 옷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지만 고대 시대에는 양반은 양반 입는 옷이 있었고 평민은 평민이 있는 옷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옷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와 위치, 계급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옷을 벗었다는 것은 그 위치와 지위를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에도 어떤 직에서 내려온 사람을 옷을 벗었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옷을 벗었다는 것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한다, 혹은 그의 지위가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고대시대에 노예, 종들은 신을 신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을 벗었다는 것은 바로 노예, 종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80살에 미디안 광야에서 부르실 때 네가 있는 곳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명령은 그동안은 자신이 주도하는 인생을 살았는데 신을 벗고 하나님이 주도하는 인생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이제부터 너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게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에게 3년 동안을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는 건 수치와 부끄러움을 안고 노예와 되어 살아갈 애굽과 구스, 이디오피아에 대한 예표가 되게 하신 겁니다.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엉덩이를 드러내며 부끄러움과 수치 가득 노예로 끌려가는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가 온몸으로 선포하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면서 하나님의 극약 처방으로 말씀을 선포한 핵심이 바로 장차 있게 될 애굽과 구스의 예표인 겁니다. 애굽과 구스가 직면하게 될 이 비참한 모습을 누구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인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벗은 몸과 벗음 발이 애굽과 구스의 예표이자 너희의 자화상이라고 경고하시는 겁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애굽과 구스는 하나님 대신 붙들고 있었던 나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바라고, 하나님 대신 자랑하고, 하나님 대신 믿었고, 하나님 대신 달려가 도움을 구하던 나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고 자랑하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 달려가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보다는 눈에 보이는 애굽과 구스의 힘과 능력이 더 든든해 보이고 더 믿을 만해서 붙들고 기대며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대신 그렇게 붙들고 믿고 의지하고 바라던 자랑하던 나라들이 벗은 몸과 벗은 발이 되어 포로가 되어 완전히 무너지며 되며 수치 가득 자빠지게 될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적용해 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이 바라고 자랑하는 분, 믿고 달려가 도움을 구하는 분이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돌아보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불순종한 남 유다와 예루살렘 같이 하나님 대신 자랑하고 바라며, 하나님 대신 믿고 달려가 도움을 구하는 것들이 있는지….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차별 없이 똑같이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바라고 자랑한다면,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세상 힘과 나라들을 믿고 달려가 도움을 구한다면, 결국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주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깊게 들어가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사야 선지자의 벗은 몸과 벗은 발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우리의 죄만 감당하시고 죽으신 게 아니라 그 죄에 담긴 수치와 부끄러움도 모두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벗은 몸과 벗은 발로 죽으셨다는 것을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 죄로 인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두 온몸으로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값은 다 해결되며 우리 죄로 인한 수치와 부끄러움도 다 해결해 주셨음을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림자와 같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3년동안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득 안고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는 모습은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죽으시며 우리 죄의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감당하시고 해결하시는 보여주시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이 예표되는 것입니다. 불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에 반응이 없는 영적 무감각증에 빠진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자화상일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 대신 애굽과 구스를 믿고 의지하다가 발등 찍히고 무너지는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자화상일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말씀을 듣지 않고 반응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때로는 극약 처방을 쓰면서까지 이사야 선지자같이 온몸으로 선포하게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애굽과 구스가 대단해 보이고 당장 내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 줄 나라들 같이 보여도 조만간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며 무너질 모래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런 나라들을 등에 업고 의지하며 나아가면 그 길이 멸망의 길이고 무너지는 길이며 심판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대신에 믿고 의지하려는 나라들이 있습니까? 하나님 대신에 바라고 자랑하는 어떤 힘과 물질이 있습니까? 그것을 하나님 대신 믿고 붙드는 순간 여러분들은 망하는 길로 질주하는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 답게,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하나님에게 달려가 도움을 구하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오직 하나님이 마련하신 피난처로 달려가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며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March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