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는 내용 자체인 메시지와 전하는 메신저가 있습니다. 언제나 변함 없는 복음의 메시지가 메신저를 통하는 어떻게 잘 전달 되느냐에 따라 은혜의 복음이 선명한 능력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왜곡과 변질이 되기도 합니다. 순전한 복음 진짜 복음을 있는 그대로 메신저가 잘 전할 때 놀라운 은혜가 되며 교회가 복음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반대로 복음을 잘 전하지 않고 복음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일, 복음을 임의적으로 덧칠하거나 바꾸는 이런 일들이 늘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 비판하고 경계하고 있는 다른 복음, 유사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의 메세지가 변함없이 분명한데 그것을 전하는 메신저들로 말미암아 원래 복음의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될 때 성도들의 영혼을 죽이는 악한 일이 된다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갈라디아서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로 충분한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참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며, 다른 것들을 구원의 조건으로 만들어 이방인들의 발목을 잡으려 하는 유사복음/다른 복음에 대한 강력한 경고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유력한자들은 그 당시에 이미 예루살렘에 있는 이름 있는 사람들, 즉 초대교회에서 먼저 교회에 나와 믿고 있던 유대 기독교인들입니다. 교회에 먼저 터를 잡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 유력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은 외모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가 아니라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분명한 믿음 대신에 먼저 온 유력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참 자유함 가운데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 말 대로 해야 되나 이 사람 말 대로 해야 하나….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유함을 주시는 복음이 자꾸 속박 되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생활이란 내가 외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겉모습의 신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이 겉모습으로 보이는 행위가 신앙의 잣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방인 회심자들이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정결 음식을 지키는 문화적으로 유대인이 되는 것을 구원받기 위한 조건과 자격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경계하면서 신앙의 본질은 결국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나 외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중심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일날 예배 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헌금 들이고 선교하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결정 되는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 안의 중심에 예수 생명이 있는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내가 온전히 예수 이름 예수 보혈을 의지하고 살아가는가… 이것이 신앙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이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또한 이 본질과 중심을 붙드는 싸움은 내 인생의 가치와 의미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옴을 분명히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의 인생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이 분명하다면, 내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에 부합되게 나아갈 때 내 인생의 참 가치와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마이크는 목소리를 증폭하기 위해 만든 것이죠. 그래서 마이크를 마이크의 용도대로 잘 사용할 때 마이크라는 물건의 가치가 드러나듯이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에 그 하나님의 만드신 뜻대로 내 인생이 나아갈 때 나의 인생에는 가치와 의미가 발견된다는 겁니다. 내 인생에는 나를 만드신 분의 뜻이 분명히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맡기신 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해 잘 전하는 사명을, 사도바울에게 맡기신 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해 잘 전하는 사명을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복음의 진리 가운데 자유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각의 사람들에게 맡긴 사명과 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을 때 하나님의 만드신 목적대로 잘 사용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신저로서, 맡기신 그 사명과 일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사명과 일을 통하여 나의 견해와 입장이 아닌 오직 복음을 있는 그대로 순전하게 잘 전달하는데 집중하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발견한 인생의 가치와 의미는 그 사명과 부르심에서 분명히 발견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무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만드셨음을 깨닫고, 거기에 올인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과 뜻에 내가 조율되어 나아갈 때 나의 삶에 가치과 의미가 발견됨을 사도바울은 온몸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만드신 분의 뜻에 맞게 내가 나아갈 때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비교할 필요도 없고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부르신 그 사명을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라는 겁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바울의 맡기신 사명이 다르듯, 부르신 시간과 부르신 대상이 다르고 그것을 통하여 비교할 필요도 경쟁할 필요도 없이 각각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겁니다. 내 인생의 가치는 그냥 돈 버는데 있는 게 아니라 부름을 받은 데 있음을, 그 부름에 순종하여 나아갈 때 나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소명 의식이 중요합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내 능력과 힘에 맞는 일 대신 하늘의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감당한 힘과 능력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듯,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간 성도로 살아가게 된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성도들을 각각에게 맡기신 뜻에 조율되어 살아갈 때, 만드신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내 삶의 가치와 의미가 발견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뜻 가운데 내가 서 있음을 분명히 알 때 내 인생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나의 인생의 가치와 의미는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인 그 부르심에 나의 인생이 조율될 때 진정으로 발견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발견하게 될 때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은혜 가운데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며, 내 삶이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인생은 내 주변 사람과 비교를 통하여 가치와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신 분의 뜻이 이루어짐을 통해 가치와 의미가 발견됨을 잊지 마십시오. 오직 내가 주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으며 주님이 부르신 그 길을 당당하게 흔들리지 않으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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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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