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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은사의 성경적 기초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계속 나누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고 영적으로 뜨거운 교회였는데 동시에 문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은사는 부어지는데 영적으로 미성숙한 교회였고 갈등과 분열과 어려움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어떻게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느냐? 그게 고린도 교회의 도전이었고 많은 이 시대의 지상 교회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은사로 말미암아 영적인 혼란과 어려움과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방언 은사였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통하여 방언에 대한 두 가지 극단에 대해 배웠습니다. 방언에 대한 폐기론자들, 방언에 대한 만능론자들, 이 두 가지 극단을 다 피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방언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성경에 등장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사도행전적 방언,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로서 역사하신 방언이 있고 동시에 고린도전서적인 방언,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방언에는 이 두 가지의 종류가 있고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만이 방언의 전부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방언의 영적 유익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알고 확신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방언은 기도를 할 때 깊은 기도와 오랜 기도를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의 은사는 영적으로 굉장히 유익한 은사이며 도구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방언의 은사가 주신 목적대로 잘 선용되지 못하면 방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개인도 교회가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방언의 은사는 잘못 사용하게 되면 빠지는 부작용이 있고 도전과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잘못 사용하면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적어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네 가지의 부작용과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성경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문제 네 가지를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네 가지의 부작용이 무엇인가 하면 @방언이 예언보다 위로 가는 부작용. @방언이 은사임을 망각하는 부작용. @방언이 교만과 타인의 멸시 도구가 되는 부작용. @방언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는 부작용입니다. 이 네 가지로 말미암아 교회에는 방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부장육이 생겨서 큰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죠. 방언의 은사를 성경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첫 번째 부작용이 뭡니까? 방언이 예언보다 위로 올라가는 겁니다. 방언의 은사가 그 어떤 것보다 너무 중요해져서 방언 외에는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 신앙의 절대 가치인 예언보다 위로 올라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맡긴 말씀을 전하는 게 예언인데 이 말씀보다 내 영적 체험인 은사가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죠. 이 문제는 기독교 역사에서 계속 반복되었던 문제입니다. 그래서 감리교회 창시자인 존웨슬리 목사님은 끊임없이 성경 아래 이성과 경험과 전통이 통제 받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내 체험이, 때로는 내 이성이 말씀 위로 올라가려 하는 겁니다. 내 이성이 말씀 위로 올라가면 내 이성에 받아들이고 수용되는 것만이 진리라고 착각하게 되는 게 위험한 겁니다. 내 체험과 경험이 중요하지만 그 경험과 체험이 말씀 위로 올라가면 영적 질서와 우선 순위가 다 무너지게 된다는 겁니다. 영적이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본인들끼리 방언을 가지고 얘기하며 예언은 무시하고 살아가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많은 이단과 사이비의 특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체험과 경험이 말씀 위로 올라갈 때예요. 방언의 은사가 예언보다 위로 올라가는 겁니다. 방언의 은사가 예언보다 위로 올라가게 되면 영적이라는 것을 판별할 때 말씀이 아닌 체험과 은사를 가지고 판별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저 사람은 영적이다 아니다…라는 것을 단순히 방언 하나로 그냥 결정해 버리는 부작용을 낳는 겁니다. 친밀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귀하지만 방언의 은사가 귀하지만 그 방언의 은사가 예언 위로 올라가면 망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언제나 방언의 은사는 예언의 위로 올라가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방언이 은사임을 망각하는 부작용입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은사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것이기에 그 목적대로 쓰임 받아야만 삽니다. 성령의 은사는 주신 분의 뜻과 계획대로 사용되어야지 나를 위해 사용하면 망합니다. 나를 위해 사용하면 망하는데도 불구하고 방언의 은사는 특별히 나를 위한 유익으로 왜곡되고 변질되기 쉬운 겁니다. 방언이 마치 훈장과 같이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어… 내가 이만큼 영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어 버리기 너무 쉽다는 겁니다. 방언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방언이 은사라는 것을 망각하는 게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 때문에 시작은 좋았는데 결국 은사와 함께 자빠지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겁니다. 이런 일이 고린도 교회에 계속 발생했고 지금도 많은 교회에 계속이 은사주의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문제들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방언이 자기 교만과 타인의 멸시에 도구가 되는 부작용입니다. 방언 받은 사람들이 예배 중에 방언 기도를 크게 하면 자기는 기도가 잘 될지 모르겠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방언 기도한다는 것이 자랑이 자꾸 되어 가는 겁니다. 말로 안 해도 그게 자랑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 버립니다. 저 사람은 방언을 받았나 받지 않았나 그걸 가지고 A급 B급 C급을 나누듯 사람을 자꾸 나누는 것이죠. 방언 못하면 기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이고 방언 못 하면 기도를 제대로 못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 여깁니다. 방언 못 받으면 영의 사람이 아니라 육의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 이게 위험한 거라는 거예요. 방언은 절대 구원의 도구도,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도 쓸 수 없는데 여기에 매몰되면 이렇게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인 방언을 가지고 타인을 멸시하고 자기를 교만으로 세우는 도구로 변질되는 것을 율법화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를 구하는 게 다 율법이 되는 겁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바리새인들이 자기는 기도도 한 번도 안 빠지고 금식 기도하고 십일조 다 드리는 것을 자랑하는 것을 예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몰아 세우셨습니다. 이유는 바로 그들의 율법 지킴이 자기 교만과 타인 멸시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하나님을 의식하며 드리는 나의 거룩한 영적 습관이 아닌, 자기 의를 강화하고 교만해지며 타인들을 멸시하는 율법이 되어버린 겁니다. 방언의 은사가 정확하게 그런 율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 교만과 타인 멸시의 도구로 너무 쉽게 방언이 변질되어 버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의미에 있어서 방언의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셨는데 아이러니하게 성령의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겁니다. 나만 대단해 보이는 거죠. 나만 특별하게 보이는 겁니다. 심지어 그 방언을 주신 분인 성령을 구하지도 않고 예수님 앞에 굴복하지도 않는 겁니다. 그리고 뭐만 남는가 하면 나는 방언하는 특별한 사람…나는 방언하는 대단한 사람…. 이것만 남는 거예요. 내가 그만큼 특별하고 내가 그만큼 영적으로 깊고 내가 그만큼 영적으로 우위에 있다… 방언이 이것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어 버리니까 교회에 덕이 되지 않은 겁니다. 덕이 된다는 것은 내가 그걸 통하여 나도 기쁘고 주변 사람들도 기뻐야 되는 것이고 나에게도 복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를 말하면 말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다 힘들어지고, 주변 사람들은 다 갈라지고 무너지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구하고 신령한 것은 구하는데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음에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 본질에 근거하지 않고 은사만을 구하고 신령한 것을 구하니까 결정적으로 교회 덕이 안 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시험에 들고 교회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이게 바로 방언의 은사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부작용입니다. 이게 바로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방언 은사의 부작용입니다. 잘못 사용하면 성경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하면 나타나는 이 네 가지 부작용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말씀은 이 네 가지의 부작용에 빠지지 않기 위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가 분열하고 갈등하는 도구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 이것이 고린도 교회가 방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직면했던 문제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방언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영적인 은사이며 하늘의 선물이며 신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네 가지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잊지 않고 경계해야 합니다.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이지 내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훈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주신 뜻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나를 대단하게 높이고 타인을 멸시하며 타인을 판단하는 도구가 되는 부작용을 가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 사용하게 되면 나타나는 이 네 가지의 부작용을 마음에 새기고 그러지 않도록 잘 사용하는 것이 방언의 성경적 사용 방법임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성경적인 방언 은사를 잘 사용하여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사랑을 근거로 말씀을 붙들고 성경적으로 잘 조율되어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가 무너지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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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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