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동안 십자가 상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유언과 같은 가상 칠언을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십자가에서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하는 말씀이 두 번째 말씀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힘들고 아픈 거 하나를 꼽는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하는 배신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시는 그 고통은 일차적으로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입니다. 그 십자가 형이 주는 말할 수 없는 물과 피를 다 쏟는 고통이 예수님에게 상상할 수 없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 두 번째 어떻게 보면 더 큰 고통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고통입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지시고 모든 죄 무게를 지금 가시 면류관에 쓰고 지금 견디고 계신 거죠. 거기에 삼중적 고통 하나가 더 추가 되시는데, 가장 믿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거기서 목숨을 내놓은 결단으로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그나마 덜 힘드셨을 수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에 제자들은 배신하거나 도망가거나 숨은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3년을 먹고 마시고 목숨 걸고 주님과 함께 하겠다고 호언 장담했던 그 제자들이 십자가상에서는 배신하고 다 사라져 버린 것이죠. 그리고 누구만 남아 있는가 하면 여인들과 제자 요한이 전부였습니다. 성경은 남자들은 다 도망가고 남아있는 여인들이 결국 십자가를 지켰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 배신의 아픔과 쓰라린 가운데 유일하게 목숨 걸고 그 십자가 자리에 있었던 제자가 요한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두번째 가상 칠언은 그 요한과 자기의 친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하는 제일 큰 불효 중에 하나가 자식이 먼저 죽는 거라고 합니다. 그것도 병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가장 끔찍한 처형을 받아 죽는 현장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온 아들이 발가 벗겨져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고, 온몸에 피와 물을 다 쏟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은 말할 수 없는 절망이었을 겁니다. 그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 마음을 헤아리며 십자가에서 유언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함께 남아있는 제자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끝까지 자기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것을 통해 두 가지를 묵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는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끝까지 효도하며, 십계명에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마지막까지 지키는가에 대한 아들로서 효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정말 효심이 대단하고 끝까지 어머니를 부탁한 착한 아들, 대단한 아들, 귀한 아들, 이게 첫 번째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게 두번째 의미로서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새로운 가족의 개념이 무엇인가를 선언하시며 유언으로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천국에서 얘기하는 가족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족이고, 사명으로 맡겨진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한테 친어머니를 부탁할 때, 단순히 내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보라, 너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인데 이제 너의 어머니라는 겁니다. 스승의 어머니이니 당연히 제자 요한의 어머니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에서 재정의되는 가족의 의미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가족은 혈연을 넘어서,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어머니이며 형제 자매임을 선언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로서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한 가족이라고 얘기할 때, 그냥 상징적으로만 영적 가족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실제적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모인 자들로 가족의 정의가 재편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가 나의 어머니일 뿐만이 아니라 너의 어머니다…라고 유언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요한이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음을 의도적으로 증언합니다. 이걸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라는 건 뭐냐면 맡겨진 사람들을 믿음으로 품는 게 가족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영적 가족이란 혈연을 넘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가족이고, 맡겨진 자들을 품는 게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 부탁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요한은 12제자 중에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제자들은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같이 모시며 끝까지 함께 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에 주님이 맡기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호불호가 있고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가족의 본질은 맡겨진 자를 내가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기에 힘들고, 사랑 받을 만하지 않은 거 같고, 용서 받을 만 하지 않은 거 같은 이런 어려운 성도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바로 천국 가족이지…. 맡겨진 자를 품는 게 가족이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신의 가족에도, 영적인 가족인 교회 공동체에도 이 두 가지를 늘 기억하는 것이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 그 가치를 붙들고 모여 있습니까? 또한 우리는 맡겨진 자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십니까? 그게 새롭게 재편되는 천국에서 영적 가족의 본질임을 잊지 마십시오.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맡겨진 일과 사명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맡겨진 일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맡기셨군요…하고 품고 가는 게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맡겨진 일과 맡겨진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하는 것이 영적 가정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구경꾼이나 손님 같이 오는 분들은 맡겨진 사명과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고, 제자들은 맡겨진 사명과 사람들을 십자가를 지듯이 책임을 감당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사명을 지키고, 그 사람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 맡겨진 사람들, 맡겨진 사명들, 맡겨진 자리를 충실하게 지킬 때 주님이 주실 빛난 면류관이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이 그 길을 걸어 가셨듯이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사람들, 주님이 맡기신 사명, 주님이 맡기신 자리를 외면하지 않고, 충실히 끝까지 지키는 충성의 제자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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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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