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지도자던 이 세상의 지도자던 지도자의 요건 중에 하나가 바로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는 겁니다. 영어로는 emotional disengagement라고 하는데 쏠린 감정에서 빠져 나오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정에 오래 매몰되어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아니라고 보는게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자기 앞에서 환자가 죽어갈 때 그 죽어간 환자가 나 때문에 죽어갔다고 자책하면서 그 쏠린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의사의 일을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간 환자가 안타깝지만 자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환자가 있음을 알고 얼른 마음을 추스리고 그 다음 환자에게 갈 수 있어야 지도자가 되는데 그 감정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결국 그 자리에서 무너져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왕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자기 감정에 매몰되어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목숨 걸고 전쟁에 참여한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다윗왕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다윗왕은 아들 압살롬이 죽은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마음이 매몰되어 단장의 마음으로 슬퍼하며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야로 내몰리면서 다윗 자신이 하나님 앞에 압살롬과 같이 반역하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등에 칼을 꽂은 죄인이었음을 돌아보았기에 다윗은 지금 압살롬의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에 내 아들이 죽은 것처럼 끌어안고 자책하며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칼을 들이댄 반역자였고 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나쁜 사람이었지만 압살롬은 다윗에게는 여전히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통곡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슬퍼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지금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해 나가 싸워 이기고 돌아온 후에 그 왕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라는 것이죠. 자식이 먼저 죽은 아버지의 슬픔을 과소평가할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다윗 왕은 자신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 준 백성들의 마음을 챙기고 돌봐야 할 지도자이자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개인적인 슬픔에서 빠져나와서 기적의 승리로 전쟁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고 돌아볼 영적인 책무가 그에게 있었는데 다윗이 너무 감정적으로 매몰 되어서 적군의 수장이자 반란자인 압살롬의 죽음만 애도하고 슬퍼하고 있는 겁니다. 그날 다윗의 군대가 경험한 승리는 기적의 승리이자 하나님께서 앞서 싸워 이겨주신 영적 승리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숫자로 봐서는 절대 다윗의 군대가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해 주셔서 하나님이 이기게 하셔서 압살롬과 그 군대를 모두 무찌른 놀라운 영적 승리였습니다. 그렇게 절대 열세의 전쟁에 다윗왕을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운 군사들이 돌아올 때 당연히 축제의 분위기에 승전가를 부르는 기쁨이 가득해야 했으며, 왕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을 기대를 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왕이 기뻐하고 축하해주기는 커녕, 적군의 수장이자 반란자인 압살롬을 애도하고 슬퍼하고만 있으니까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듯 가라앉은 것입니다. 너무나 강한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기적과 같은 대승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영적 승리였는데 백성을 대표하는 왕은 지금 대성통곡하고 소리 높여 울고 있으니까 기뻐할 수도 없고 슬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목숨걸고 싸운 후 돌아온 군인들 사이에 어떤 마음이 드냐면 우리가 괜히 싸웠나 보다…목숨 걸고 싸웠는데, 동료 중에는 이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게 뭔가…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 왕을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 우리는 뭔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승전가를 부르며 복귀한 군인들이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되는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자기가 공인이고 지도자라는 것을 망각한 채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여 큰 승리를 경험하고 돌아온 백성들과 군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그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마음에 절망감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뭐냐면 큰 승리 이후에 돌아온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이 품어주지 못하니까, 승리를 승리로 기뻐하지 못하니까 9절부터 15절까지를 보게 되면 백성들의 마음이 갈라진 것이 수습이 안되서 이곳 저곳에서 문제로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아버지 왕의 편과 아들 압살롬의 편으로 나와서 전쟁을 했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죽었고 전쟁은 끝이 났지만, 사분오열된 백성들의 마음은 큰 상처와 분열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어떻게든 품어서 나누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아야 되는데 지금 다윗 왕이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안 그래도 시한 폭탄같은 백성들이 다윗 왕을 왕국으로 모셔온데 있어서 의견이 계속 갈리며 이곳 저곳에서 뻥뻥 터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 속 감정을 돌아봐야 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내가 지도자로서 돌봐야 될 백성들이 있다라는 것을 망각한 채, 결정적 순간에 백성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품지 못하여 나라 전체가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군대 장관인 요압이 총대를 매고 다윗 왕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왕 앞에 총대를 매고 나아가 왕에게 정신 차리시라는 말을 직언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우리 모두가 죽고 반란군의 수장 압살롬이 살았으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다고…백성들의 마음을 가감 없이 왕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주셔서 성대한 축제를 벌여도 모자라는 판에 반역자인 압살롬을 위해서 왕이 이토록 슬퍼만 하는게 백성들의 마음을 멸시하고 나라를 뒤흔드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시냐며 탄원하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압살롬의 죽음만 슬퍼하는 것이 우리 백성들과 군사들을 멸시하는 것이며, 얼마나 백성들의 마음을 상심하게 만드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이렇게 작심하고 직언하는 겁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슬픔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할 때임을 잊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왕으로서 지금 다윗이 해야 될 일은 목숨 걸고 싸운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품어주는 것임을… 마음을 깨우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다윗왕은 이 요압의 직언을 듣고 말을 듣고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자기 감정에서 빠져 나와 일어나 성문에 앉았습니다. 왕이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왕이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려고 앉았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이제 자기 개인적 슬픔을 거둬들이고 왕으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번 깨달아 이 시간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품으려고 왕의 직에 돌아와 앉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문제가 수습되게 되는 것이에요 지도자의 자질 중에 하나가 내 개인적인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는 힘, 백성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깨지고 아픈 세상을 사노라며 우리 인생에 어려움과 아픔, 눈물과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너무 슬퍼서 단장의 아픔으로 통곡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픈 일이 우리 가운데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도자라면, 내가 품고 돌보는 백성이 있다면 내 개인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면,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기뻐하고 찬양해야 하는 그날의 이김이 백성들에게 슬픔이 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삶이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이며 이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임을 잊지 말고, 내 감정에 속히 빠져나와 주님께서 주신 사명 가운데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품으며 그 백성들을 세우는 일로 속히 복기하는 영적 회복 탄력성이 우리 가운데 회복되기 원합니다. 내 개인적인 슬픔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승리를 멸시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빠져나와야 되는 감정임을 잊지 않으며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자로 선명하고 굵직하게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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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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