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다윗왕이 압살롬의 반역을 다 진압하고 왕으로서 귀환하는 장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들에게 배신 당하며 그렇게 힘들게 큰 고생을 하며 광야 생활을 했지만 그 시간을 통하여 영적 민감함과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회복하여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피난길에서 다시 돌아와 왕으로서 귀환하게 될 때 다윗왕 앞에 세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다윗왕 앞에 찾아온 이 세 사람은 우리 인생이 어려웠다가 회복되게 되면 우리 인생에도 찾아오게 될 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윗왕이 이 세 사람들을 어떻게 치리하고 대하는가를 통하여 나의 인생에 찾아오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치리하고 대해야 될까를 우리가 영적 진리로 마음에 새겨보기 원합니다. 첫 번째 왕으로 귀환하는 다윗왕 앞에 등장하는 사람은 시므이와 베냐민 사람 천명입니다. 시므이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하면 나의 인생이 가장 힘들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의 대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시므이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다윗왕이 힘이 빠지고 약해져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게 될 때 가장 앞에서 다윗을 저주하던 자였습니다. 다윗을 저주하는 것을 넘어 그에게 욕하며 돌을 던지며 모욕적인 행동을 했던 자가 바로 시므이였습니다. 나에게 상처가 너무 아픈데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자, 바로 시므이 같은 자입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내가 힘이 좀 있을 때는 지위와 권한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내가 힘이 조금만 빠지게 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썰물과 같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나가는게 아니라 시므이와 같이 나에게 욕하고 돌을 던지고 저주하며 떠나가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이 세상 살이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썰물과 같이 떠나가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좋은데 다윗왕이 힘을 다시 찾아 왕으로 복귀하게 되니까 시므이와 같은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돌아와 지금 다윗 왕 앞에 엎드리는 것이죠. 썰물같이 빠져나가며 돌 던지고 저주했던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1000명과 함께 다시 돌아와서 살려 달라고 엎드리는 겁니다. 무슨 낯짝으로 돌아오냐고….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냐 우리가 상심할 수 있으나 그게 인간의 죄성을 가진, 그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내가 힘들 때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자가 내가 상황이 괜찮아지고 좋아지니까 다시 돌아와 친한 척하고 엎드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시므이 같이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힘들게 한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거나 철저하게 복수해 주는 것이 내 감정에 흐르는 본능입니다. 다윗의 군대 장관 아비새가 조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나에게 소금을 뿌린 이런 사람들은 살려두지 않고 당장 처단해야 하는게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놀랍게도 인간 같지도 않은 시므이를 보복하지 않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시므이와 함께 엎드린 베냐민 사람 천명을 다 품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죽이지 않고 감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품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렇게 시므이를 죽이지 않고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왕이라는 직책의 본질을 광야 피난길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전에도 다윗은 왕이었고 늘 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배신당해 광야로 쫓겨나서 피난길에서 왕권의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가 영적으로 민감해지고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압살롬과 같이 반역하고 불순종과 교만이 가득한 존재였음을 직시하였고,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한 마음으로 품어주시고 거둬 주셔서 내가 이렇게 왕으로서 지금 주신 명을 감당할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옛날에도 왕으로서 역할을 감당했지만 그때는 하나님 앞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 채 왕의 자리에 있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광야 피난길을 통과한 다윗왕은 이제 진정한 왕됨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쓰임 받아야 되는지를 깨달은 것이죠. 내가 하나님께 기름 부은 왕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붙들고 나니까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시므이 같은 자를 죽이지 않고 품고 용서하는 놀라운 왕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다윗왕이 왕으로 귀환할 때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므비보셋과 같은 사람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왕 생각에 당연히 1순위로 자기를 따라올 것 같이 생각했던 측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피난길에 함께하지 않은 사람, 꼭 나를 배반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므비보셋입니다. 시므이는 처음부터 아예 대놓고 다윗왕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고 돌 던지고 욕했던 사람이라면 므비모셋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이 사람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생각하고 기대했던 자였는데 따라오지 않은 것이죠. 요나단의 아들로서 그 왕의 식탁에서 늘 초대받았던 정말 아들과 같이 생각했던 므비보셋인데 그가 피난길에 같이 동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적잖은 실망감과 섭섭함, 배반당한 마음이 다윗왕에게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므비보셋은 내가 그토록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배신하고 등 돌리고 멀어진 거 같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적어도 나를 도와줄 줄 알았던 그런 사람들이 배신하고 함께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느끼는 상실감이 매우 큽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직면하고 그 사람들과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다윗왕 같이 그 사람에게 먼저 솔직하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 므비보셋이 다윗이 왕으로 귀환하는 여정 중에 만나게 되니까 다윗 왕이 빙 돌리지 않고 솔직히 물어봅니다…왜 나를 따라오지 않았느냐고…내가 피난길 갈 때 적어도 너는 나와 같이 갈 줄 알았는데 배신감 느끼게 왜 가지 않았느냐 물어보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왜 그때 나와 함께 하지 않았고 나의 편에 서지 않았냐고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물어보고 나니까 므비보셋에게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로 피난길에 걸림돌과 짐이 될까봐 가지 못한 것이었는데, 그 종 시바가 모함을 해서 므비보셋과 다윗왕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해하게 만들도록 참소해서 다윗왕이 그걸 통하여 배신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그런 나쁜 일을 그 종 시바가 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다윗 왕이 그렇게 피난 간 후에 므비보셋은 수염도 깎지 않았고 옷도 빨지 않으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충성된 마음을 지키면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밭을 종 시바와 나누라고 했을 때 그거 다 종이 가져가도 상관없다고 대답할 정도로 므비보셋에게는 다윗왕이 안전히 돌아왔다는 것 그것으로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정말 순전한 신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해한 것은 오해한 것이구나…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래서 잘못 이해했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이 상하지 않고 그 오해를 풀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힘을 회복했을 때 해야 되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힘들고 어렵게 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썰물과 같이 다 빠져나갑니다. 그냥 빠져나가는게 아니라 나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하면서 떠나가는 시므이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나를 떠나갔다가 내가 힘이 생기니까 철판 깔고 나에게 다가오는 혈압 올라가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당연히 나를 따라오고 나를 도와주고 내 편에 든든히 서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 섭섭하고 배반 당한 느낌이 드는 므비보셋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시므이가 다시 돌아온다면… 여러분들에게 므비보셋이 다시 돌아온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그들을 처리하시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대하시겠습니까? 뻔한 반응은 나에게 힘이 생겨 다시 돌아올 때 가만두지 않는 겁니다 복수하는 겁니다.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뻔한 반응이 아닌 놀라운 영적 반응으로 죽이지 않고 보복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품는 것, 이것이 이 험한 세상에서 성도됨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천국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하는가가 여러분들의 영적 수준을 판가름 합니다. 내 힘이 빠지고 어려울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썰물과 같이 떠나감을, 내가 또 힘이 생기고 돌아오게 되면 철새와 같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이고 죄인된 자화상임을 잊지 않고 사람들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기 원합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경험되어 막힌 것들이 풀어지며 원수 맺어진 것이 녹아지며 오해도 풀어지는 이런 기적의 삶, 주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과 은혜의 길로 나아가는 귀한 역사가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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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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