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은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여시는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에서 사용하시는 중심 되는 사람이 왕들이 아니라 바로 선지자 사무엘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사무엘의 출생은 그 당시 로열 페밀리 집안이나 제사장 집안을 통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 시골에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않던 평신도 집안을 통해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 흐름 가운데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과 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는 말씀이 3장에 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중심이 조율되지 않은 채 겉사람의 모습만 붙들고 서 있으면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엄중한 말씀이 사무엘상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종교 지도자인 엘리 제사장의 둔감함과 저 시골 변방의 평신도이자 여인인 한나의 영적 민감함을 함께 대조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 두 사람의 대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영적 민감함과 둔감함 정도가 아니라, 그 집안 전체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적 상승 곡선과 버림받는 하향 곡선을 선명하게 대비하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주님 앞에 가까이 가며 은혜 안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각성하는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는 와중에, 문설주 의자에 앉아 있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나와 그 모든 가족들은 제사가 끝난 후 그 가족에게 분배받은 음식들을 감사함으로 먹고 있는데, 한나는 마음속에 응어리와 답답함, 후벼파는 아픔이 해소되지 않아서 그 남편 엘가나가 아무리 잘해 주고 지극정성으로 위로해도 그 마음이 해갈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성전에 나와 지금 마음을 토설하기 위해, 통곡하고 기도하기 위해 나아왔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나오고 있는 한나와 달리 엘리 제사장은 성전에 있기는 했는데 성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엘리 제사장은 예배당 안 밖을 가르는 경계선인 문설주 곁에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예배당의 중심의 혹은 맨 앞에 앉아서 예배자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나가는 문 맨 뒤에 문설주에 있었다는 것이죠. 그게 그의 영적인 지금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는 겁니다. 오해 없이 들으서야 하는데 여러분 예배에 꼭 뒷자리가 은혜가 없다는 건 아니에요. 물론 맨 앞에 안된다고 마음까지 맨 앞에 있는 건 아닐 수 있어요. 물론 맨 뒤에 앉는다고 해소 마음까지 맨 뒤에 있는건 아닐 수 있습니다. 예배당의 맨 뒷자리가 은혜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늘 예배당 맨 끝 문 앞에 습관적으로 앉아있는 것은 영적 상태가 드러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영적으로 민감하고 깨어 있어야 할 제사장이 몸도 마음도 저 맨 문설주 끝에 있었다는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문설주 곁에 그 의자에 앉았다 했습니다. 의자는 성소 예배당 안에 놓는 기구가 아니었습니다. 의자는 예배당 안에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엘리 제사장은 그 성전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설주를 경계로 그 밖에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당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예배당 밖 복도에 앉아 있었던 거죠. 거기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자주 목격되었으면 “그 의자” 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거의 엘리 제사장 전용의자, 늘 거기 앉아 있는 것이 습관화 되었던 것입니다. 편안하게 앉아 가지고 문설주 뒤에서 예배당에 사람들 감시하고 체크하러 앉아 있는 겁니다. 누가 왔나…안 나왔나 체크하고 저 사람이 지금 뭐 하나하나 체크하고….예배자로 여호와의 성전에 오는게 아니라 감시자로 있고 자기는 의자에 떡하니 앉아 있는 이 모습이 제사장 엘리의 영적 현주소였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성전에 몸이 가 있기는 했지만, 성전에 예배 드리러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오려는 갈망이 아니라 그냥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현장에 있는 영적 둔감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영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영적으로 철저히 둔감해진 그의 영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적으로 둔감해진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향한 평가입니다. 기도하며 탄식하는 한나를 바라보며, 저 여인이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안타깝고도 괴롭게 기도할까…를 생각한 게 아니라, 술 취한 줄 알았습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다시 말하면 뭡니까? 지금 성전에 오지 말아야 될 사람이 온거죠 아니 술 취한 사람이 왜 지금 성전에 왔지? …라고 여길 정도로 영적으로 둔감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술 취한 줄 생각할 정도로 영적으로 분별력이 없었던 자가 바로 엘리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엘리 제사장의 영적 둔감함은 결국 그 아들들의 망나니 같은 삶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집안이 결국 완전히 몰락하게 된 이야기와 다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엘리 제사장을 계속 사용하실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촛대가 옮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여러분들의 예배에 대한 태도가 한 두번이 아니라 반복되는 여러분들의 태도가 습관화 되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는 자세와 태도가, 하나님께 쓰임 받느냐, 쓰임 받지 못하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직분이나 나의 신앙 년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 나는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성전을 오고 가는지 정직하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엘리 제사장 같이 문설주 저 뒤에 의자에 앉아 예배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하향곡선을 걷고 있으며 영적으로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돌아 와야 될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가능하면 주님의 은혜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에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와야 되는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배 자리로 더 가까이 오기 위해 순전한 마음을 회복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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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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