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통해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선대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는 지극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실 며느리가 딸이 될 수는 없죠. 항상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그 love-hate relationship이 있기 마련이고 오죽하면 며느리를 만년 손님이라고도 말할 정도로 늘 조심스러운 관계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지금 그 두 며느리를 마치 자신의 딸과 같이 대하며 그들에게 지금 갈 길을 열어 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오미가 힘들고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 이 두 며느리들을 자신의 딸과 같은 마음으로 선대하는지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첫 번째, 나오미는 지금 이 두 며느리들은 남겨두고 자기만 돌아갈 결정을 합니다. 같이 유대 땅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며느리들은 모압 땅에 남아 너의 친정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것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이 두 며느리를 정말 위하는 마음으로 그러는 겁니다. 지금 이 두 며느리는 좋던 싫던 이 시어머니와 운명을 같이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그것을 거절하고 그들이 자신을 봉양하는 것을 거절하지요. 자신의 손익 계산과 이해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히 두 며느리 들을 데려가는 게 맞는데 이 며느리들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너희들은 이 땅에 남는게 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오미는 이민의 땅이자 객지인 모압 땅이 와 있습니다. 남의 나라이고 10년을 살았어도 모든 게 낯선 객지이지만 며느리들에게는 자신들의 고향입니다. 말도 문화도 가장 익숙한 곳이자 친정 가족들이 다 있는 곳입니다. 그 두 며느리를 유대 땅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10년 동안의 끔찍한 이민 생활을 이 두 며느리가 남편도 없이 과부로 경험하게 하는 겁니다. 두번째, 오늘 말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바로 “내 딸아..”입니다. 따라오겠다는 그 두 며느리를 거의 밀치듯이 떼어 나면서 너희들은 며느리가 아니라 “내 딸들”임을 강조합니다. 반복적으로 얘기 있다는 것은 이게 나오미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다는 거예요. 그들은 며느리가 아니라 나오미에게는 친딸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딸과 같이 생각하고 사랑하니까 너희의 앞 날들을 위해 너희는 이 익숙하고 편한 너희 친정이 있는 이 모압 땅에 머물러야 한다는 거예요.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과 같은 이 며느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나와 함께 가는게 너희에게 복이 아니라고 계속 설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밀쳐 내듯이 이 두 며느리에게 너희는 지금 각자 집으로 돌아가 그냥 이 모압 땅에서 너희 갈 길을 찾아 잘 살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며 떠나 가기를 원하는 것이죠 세번째로, 며느리들이 자신과 두 아들들에게 “선대”했음을 고백합니다. 8절의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 한 거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를 원한다”는 이 말이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실 과부가 된 나오미와 이 두 며느리는 기가 세서 남자들을 먼저 떠나게 한 흠이 있는 여인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지금 살아갑니다. 옛날에는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은 흠이 있는 여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불임하는 여인은 흠이 있기에 쫓아낼 수도 있었고,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은 수많은 압력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일찍 죽으면 그 여자의 기가 세서 남자가 요절했다며 흠 있는 여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도 죽었는데 두 아들도 손자 없이 다 죽었다 그러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다 끊어지고 소망 없는 과부 셋이 남은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응어리지고 힘들고 어려운 게 많았던 과부 나오미, 이민 10 년 생활 동안 자기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다 잃은 나오미는 사실 며느리들이 이뻐 보일 리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죽은 것을 며느리와 개연성의 끈을 찾으며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얘기하고 싶은 그 시어머니의 분노가 당연히 올라왔을 것입니다. 당연히 열등감이 폭발하여 며느리들에게 쏟아부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들이 자신과 두 아들들을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최선을 다해서 봉양하고 최선을 다해서 좋은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이죠. 두 아들 다 잃은 시어머니가 이 얘기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평소에 인생이 잘게 때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죠. 지금은 가장 깊은 절망에 헤매고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때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기의 눈물과 아픔과 자기의 분노를 며느리들에게 전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인생의 진짜 어려울 때 내 인생에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 않습니까? 그때 정말 나의 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 않습니까? 이게 시어머니로서의 나오미가 품은 놀라운 하나님의 마음이자 인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오미의 선대하는 마음과 절망가운데 원망하지 않는 태도, 나오미가 가진 놀라운 며느리들을 향한 태도, 그 선대 하는 마음 그리고 며느리를 딸과 같이 생각하는 그 마음이 결국 그 깊은 수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위한 준비였고, 새로운 길을 여기는 놀라운 밑그림을 주님께서 그리게 하는 도약이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어려울 때 인생의 큰 위기와 절망에 빠질 때 우리는 속에 있는 나의 진짜 모습이 치약이 올라오듯 올라옵니다.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탓을 돌리는 인생이 아니라 내 가족이,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선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 놀라운 기적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고백 되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법적으로 맺게 된 가족이 영원한 이방인과 영원한 손님으로 남는 게 아니라 사위가 내 아들이 되고 며느리가 내 딸이 되는 이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경험 될 때 그 가정에 놀라운 하늘의 은혜가 부어질 줄 믿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내 눈물과 아픔을 전가 하지 않고 그들을 품고 선대 하며 나아가는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히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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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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