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유명한 다윗과 요나단의 유명한 만남이 소개되는 말씀입니다. 다윗과 요나단 하면 성경에서 가장 친한 사나이…우정의 사람들로 대표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은 그냥 친구로서 좋은 관계, 서로 그냥 사랑하고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그런 친한 친구의 관계를 넘어서는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기 원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만나는 배경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겨 블레셋에게 큰 승리를 이룬 직후입니다. 그리고 나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였고 다윗은 요나단을 생명과 같이 사랑했다고 증언합니다. 사실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위치해 있는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소위 말하는 말하는 세자 저하입니다. 사울 다음에 왕위를 잇게 될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나단의 입장에서는 다윗이 급부상 한다는 것은, 다윗이 인기가 올라간다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일이자 시기하고 질투할 일이고 다윗을 싹부터 잘라 내야 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며 그렇게 승승장구할 때 가장 마음이 불편 해야 할 사람이 바로 세자저하 요나단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흔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했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요나단도 다윗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 이끄시는 영적 전쟁의 승리를 경험한 장본인들 이기 때문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과 조건이 그들을 이끈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이끄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자 저하임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사울과 같이 경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놀라게 쓰임 받는 다윗을 마음을 다해 서포트 하고 생명 다해 사랑하는 겁니다. 요나단도 블레셋과 전쟁할 때 영적 전쟁의 승리의 비결을 맛본 장본인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단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일하신 그 은혜를 경험했던 장본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인생을 던지고 붙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 쓰임 받고 사용 받아 놀라운 승리를 목도하는 그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목도한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사로잡혀 보니까 눈에 보이는 자리나 이익에 대해 목숨 걸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일하시는 다윗을 바라보며 시기나 질투 대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본 것입니다. 지금 놀라게 쓰임 받는 저 다윗이 하나님께서 일 하시며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역사의 축 이라는 것을 요나단은 감을 잡은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그렇게 용 감히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목을 베는 이 모든 과정을 보면서 요나단 자신을 통해 일하셨던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일하심을 다윗을 통해 본 것입니다. 나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게 일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다윗을 통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이라면 내가 아버지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사람이 아니라 다윗이 그 자리에 가더라고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면 포기하고 내려 올 수 있다는 영적 겸손함과 결단을 부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오늘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행동을 하는데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 요나단이 자기 입었던 군복과 칼과 활을 다윗에게 준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사울왕을 이어 왕이 될 세자저하인 요나단이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주고, 갑옷과 칼과 활을 주었다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이미 요나단의 마음에는 무엇을 결단한 겁니까? 아 하나님께서 이 시간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 다음 사람으로 준비된 자가 내가 아니라 바로 다윗이 구나…라는 것을 감을 잡고 고백하며 주는 겁니다. 이런 요나단의 행동과 결단은 인간적인 눈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생각해보시면, 가만히 있으면 내가 왕이 될 사람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왕권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차기 왕 세자저하 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모든 특권을 스스로 내어놓고 다윗에게 이것을 다 주는 이 요나단,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과 눈으로는 도저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죠. 오직 하나님의 영이 요나단에게 일하시며 그 놀라운 은혜와 순종의 힘을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적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위대하고, 너무나 놀랍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명하게 일하시는 사람들의 특징 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끄시지 않는 그 왕의 자리, 가만히 있으면 앉게 될 그 왕의 자리에 자신이 가지 않고 기꺼이 포기하고 내려놓으며 그 자리에 다윗이 가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는 자가 바로 믿음의 사람 요나단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의 아버지 사울은 어떻습니까? 겉으로 왕권을 유지하고 왕의 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이 이미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고 악신이 그를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아버지 사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왕이라는 것을 요나단은 알고 있는 것이죠. 그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하나님의 영적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그 영적 큰 그림을 가지고 사람과 환경과 시대를 볼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입니다. 요나단이 가진 영적 시각을 저와 여려분들도 가지고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요나단이 다윗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바라보며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윗을 바라보는 그 영적인 눈을 갖도록 기도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껍데기와 지위와 환경, 내가 붙들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은혜안에 없으면 소용 없는 것들이며 다 안개 같이 덧없는 것임을 깨달으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선명하게 쓰임 받고, 하나님의 때와 경륜의 흐름에 맞춰 나아가고 있는가를 늘 고민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영적 결단과 순종이 요나단에게 있었기 때문에 결국 다윗이 그렇게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상황과 사람과 어떤 조건이 끄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자 하나님의 때와 일하심이 이끄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그 영적 시각을 갖고 살아 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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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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