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왕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놀라운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비결을 안 왕이었죠. 하나님이 여호사밧에게 함께 하실 수 밖에 없었던 세 가지 이유, 함께하시는 비결은 바로 바알신과 우상을 구하지 않음, 오직 하나님만 구하며 계명을 따름,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세상 가치와 문화를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왕이 그렇게 하나님만을 구하고 우상들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계명을 쫓고 세상 문화를 등지고 살아가니 얼마나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그 나라 가운데 부어지겠습니까? 그렇게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앞에 구별되고 거룩하게 나아가니까 그에게 부어진 영적 결과와 축복이 있었는데 바로 주변 나라에서 남유다를 만만하게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주변 나라들도 보면서 두려워 떨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된 거예요. 블레셋과 아라비아에서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고 주변 나라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 하나님이 견고하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해 졌습니다. 재물도 많아지고 군사력도 많아지고 힘도 강대해지고…그런데 본질은 여호사밧이 강해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여호사밧을 강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신 겁니다. 그게 영적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과 같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이런 영적 결과, 영적인 복이 우리 가운데 실체로 경험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견고해지려 하고, 우리 스스로 강해지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만을 구하며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물질 가치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삶 가운데, 전혀 다른 인생의 비결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며 매달리는 백성들에게, 동행의 축복과 함께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견고함과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강함 가운데 거하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 하기 원하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론적인 말씀으로 주시는 “여호사밧”이라는 이름의 영적 의미를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여호사밧이란 이름은 “여호와만이 나의 판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내 인생에 재판관이라는 고백이 그 이름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 왕은 그 이름 그대로 고백 가운데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판단하심을 선명히 믿고 살아간 자가 된 것입니다. 사실 창세기에서 인간의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기 시작하는 데서 무너지는 것이죠. 그 죄의 본질에서 우리가 주님 은혜로 돌아가고 죄를 회개한다는 것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판단 하심을 믿으며 주님에게 주권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창조자 되시며 나는 피조물 됨을 철저히 인정하며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인생이 잘 살았는지 잘 못살았는지 누군가는 판단 해야 되는데 누가 판단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판단하거나, 내가 자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판단하게 하거나…이 둘 중의 하나의 패턴으로 살아갑니다. 내 인생은 내가 봤을 때 잘 살았다 생각해서 내가 판단하는 대로 내 기준에 맞춰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거나, 그게 조금 자신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판단하게 맡기는 거죠. 내 생이 어떻고 내 인생이 잘 살았는지 못살았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평가 기준을 맡기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사람들만 의식하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판단하려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판단하게 하는 것도 모두 타락한 인간의 현주소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호사밧의 은혜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인생에 판관자 되심을 선명히 믿는 삶…하나님만이 오직 내 인생을 평가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인생을 평가할 수도 없고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는 겁니다. 심지어 내 자신이 바라보는 나의 인생에 평가도 너무나 치우치고 부분적이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재판관 되심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갑니다. 열심히 산 게 귀하고 박수 받을 일이지만, 그럼에도 내 하루를 과연 잘 살았는지, 그 판단을 누가 하는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한 평생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내 인생을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그 판단을 누가 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평가 하심을 진짜 믿냐는 것이죠. 여호사밧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내 인생을 판단하시고 재판 하심을 믿는 선명히 믿는 것, 이게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내 인생을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아닌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 판단하시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바라보심을 믿고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판단 받겠다...라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고 붙들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쓸 때 내 인생을 평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붙들며 살아가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히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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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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