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적절히 사랑을 하고 적절한 관계만을 맺는 것에 익숙합니다. 교회에서도 사람들을 사랑할 때 적절하게 사랑하고 거리를 두며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달리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사이에 사랑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놀라운 사랑의 관계였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특별하게 생각하고 사랑했는가 하면 너희를 늘 생각하고 너희가 내 마음의 있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이죠. 그냥 조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적절히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항상 있을 정도로 사랑한 것입니다. 이 은혜에 함께 참여하며 늘 생각하고 사랑하는 성도의 교제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히 사랑한 이유는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에 참여한 자들이었고, 은혜에 참여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보내신 사명을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동지였으며 함께 가는 한 팀, 그게 바로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간의 관계였다는 것이죠.
은혜에 함께 참여한 자라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내가 하나님에게 일방적으로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고 늘 현재형으로 새기며 신앙 생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은혜에 빚진 자로, 늘 예수님께 나올 때는 자격 없는 자로 나오는 자들이 바로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이 은혜에 함께 참여하는 자들의 대표는 룻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이자 과부로 은혜를 받을 자격이나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격없는 자에게 전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보아스를 통해 부어지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어떤 이유나 원인을 찾을 수 없이,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선물, 그것이 룻기에 맥으로 흐르는 은혜입니다. 룻과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의 인생 자체가 바로 은혜 받음의 삶 전부였습니다. 그에게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살인자로서의 과거가 있었습니다. 예수 잘 믿고 헌신했던 성령 층만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자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유와 조건과 자격으로 설명되지 않는 전적으로 부어 주시는 은혜로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럴 송두리째 변화 지키며 은혜의 선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은혜라는 말이 희랍어로 “카리스”인데, 이 말은 기쁨이라는 말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빌립보서에서 계속 강조하는 기쁨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갈 때 나오는 열매인 것입니다. 내 삶의 기쁨이라는 것은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에 선물을 받았는가를 철저하게 자각하는 데서부터 오는 기쁨 이라는 것이죠. 그게 바로 은혜에 함께 참여하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기억하며 이방인의 사도로 그렇게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자신에게 이유와 조건과 자격이 하나도 없는 복음의 빚진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받은 은혜와 기쁨이 내 삶의 어려움을 다 덮고도 남는다고 고백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 생활 한다는 것은 결국 이 은혜 받음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이 은혜 받음을 망각하지 않고 늘 현재형으로 품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마다 늘 죄인 됨과 자격 없음을 처절하게 고백하고 은혜를 구하는 자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자격 없이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부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이 시간 내가 이 자리에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자, 그게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룩한 무리이자 천국 백성이니 성도됨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도 바울의 고백은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고백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을 표현하는데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거예요. 심장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 기관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에게 사망 판정을 내는 것은 결국 심장이 뛰는 것을 멈췄을 때 그 사람은 사망했다고 선고를 하죠. 그만큼 심장이 뛴다는 것은 생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할 때 심장도 내주고 내 간도 내주고 그렇게 얘기 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심장은 몸 전체를 움직이게 하고 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엔진과 같은 곳으로 항상 뛰고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건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 마음이 같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 마음이 들어가 있어 예수님가슴 뛰는 곳에 내가 함께 가슴 뛰고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함께 간다는 것이죠. 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위해 뛰어가는 심장과 같은 자이며 그것을 위해 나의 인생을 던진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놀라운 고백입니다. 심장과 같이 뛰며 그 몸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엔진과 같은 자로 내가 부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으며 그 엔진과 같은 사랑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는 이 사도 바울의 은혜에 대한 고백을 통해, 복음에 대한 확증과 열정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바라보기 원합니다. 내가 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내가 신앙생활 잘해서, 내가 새벽ㅍ기도를 헌신 해서, 내가 교회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 이런 것들이 귀한 일들이나, 이런 것들은 하나도 자격이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우리의 대답은 유일하게 단 한가지ㅍ입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부어주신 일방적인 주님의 사랑의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어 주셨고 천국 백성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꼭 붙들고 살아가는 자가 바로 은혜 받은 자이며 은혜에 참여하는 자 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가슴 뛰는 곳에 나도 가슴이 뛰고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들 과 관심 있는 자들에게 나의 관심과 사랑이 가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과 같이 그 복음의 열정을 품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뜨게 하는 심장과 같이 엔진과 같이 뛰어 가고 있는가….저와 여러분들에게 부어진 그 놀라운 은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 자격 없는 우리에게 부어 주신 일방적인 사랑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에게 부어진 은혜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일방적인 사랑임을 늘 마음에 새기고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로 신앙 생활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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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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