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싸우는 게 아니라 거의 일방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과 군대들은 골리앗을 보고 벌벌 떨었으며 그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것을 듣고도 심히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싸우러 나왔는데 골리앗을 보고 골리앗이 말하는 협박을 듣고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골리앗에게 완전히 압도 당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로 이스라엘 군대가 전의를 상실 했는가 하면 사울왕이 큰 현상금을 걸고, 자기 딸을 아내로 주어 왕족이 된다고 해도 나가서 골리앗과 대항할 자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반면 싸우러 온 자가 아니라 아버지 심부름으로 도시락 배달 온 다윗이 똑같이 골리앗을 보았고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윗의 반응은 이스라엘의 군대와는 정반대 반응입니다. 할례받지 아니한 언약 밖의 골리앗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바라보며 거룩한 분노 (holy discontent)가 올라오는 겁니다. 그것은 단순히 다윗이 용감하고 베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다윗은 블레셋 사람과 골리앗을 하나님의 눈으로 하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믿음의 눈이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대단해 보이는 골리앗이라도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엔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으며 하늘의 시각으로 골리앗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분명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죠 왜 사울과 그 이스라엘 군대는 다윗과 같이 위에서 아래를 보는 하늘의 시각이 없었는가? 왜냐하면 골리앗과 상황에 압도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땅의 시각 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엇과 비슷한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들어가는 입구에서 정탐을 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와 2명의 보고가 천지 차이였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압도당한 보고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들어가면 메뚜기와 같이 다 죽는다….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군대가 골리앗을 바라 봤던 모습이었죠.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치러 올라가자고 독려한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들었는데 왜 그들은 전혀 다른 고백을 하는가 하면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늘의 시각을 가지고 그들이 보았느냐? 아니면 땅에 시각을 가지고 그들이 보았는가가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다윗은 그 똑같은 골리앗을 보고 그의 모욕하는 것을 들으며 하나님의 시각과 하늘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듣는데 우리는 압도당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거기서 도망가지 않는 비결을 갖게 되는 것은 내가 용감하고 내가 능력이 있고 베짱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의 시각으로 상황에 압도 당하지 않고, 상황에 매몰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 가지 않는 영적인 감격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놀랍게 하늘의 시각으로 골리앗에게 압도당하지 않고 거룩한 분노를 내고 있는 시점에 찬물을 끼얹고 발을 거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다윗의 친형 엘리압 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듣고 큰 형 엘리압이 하는 모든 말들은 정말 말도 안되는 오해입니다. 막 화를 내며 니가 여기 전쟁터에 왜 내려왔냐며 몰아 세웁니다. 아버지가 형들에게 도시락 배달 시켜서 심부름 시켜서 온 거 아닙니까? 그리고는 마음에 교만과 완악함을 안다며 네가 전쟁 구경 왔다고 막 몰아세우고 있는 겁니다. 형 엘리압의 열등감 폭발에서 나온 말들은 하나같이 다 말도 안되는 오해들입니다. 내가 하늘의 시각을 붙들고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에 압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박수치고 야 저 사람 되게 영적이다…이럴 것 같은데 그게 착각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딴지를 걸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발을 걸고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뭐냐면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도 안되는 오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할 수록, 앞에 선두로 나가면 나갈수록 정말 말도 안되는 오해를 우리는 당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오해를 당할 때 일반적으로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에게 와서 오해 하느냐며 형 혹은 가까운 사람과 맞받아 치고 싸우는 겁니다.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 하면서 싸움이 나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렇게 오해하고 열등감 폭발한 큰 형 엘리압을 향해 상대하지 않는 겁니다. 형의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형이 한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오해였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형을 상대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에요. 지금 싸워야 할 주적은 형이 아니라, 골리앗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싸워야 할 주적 골리앗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나와 한 팀이 된 형과는 오해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는 겁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안에 오해가 있고 불편함이 있고 섭섭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상대하여 내 옳음을 증명하고 싸우다가 내가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인 사단 마귀, 골리앗을 놓치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싸워야 될 주적을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나에게 딴지 걸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그냥 흘려 보내고 무시하는 그 은혜를 주님으로부터 공급 받기 원합니다. 내가 감정이 상해서 형들과 가족들과 성도들과 대판 싸우게 되면 진짜 싸워야 되는 주적인 골리앗과는 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세상의 수많은 사건들과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이며 여러분들은 어떤 시각으로 그 사건을 해석하는가가 인생을 바꿉니다. 주님이 부어 주시는 능력이라는 것은 바로 하늘의 시각으로 나의 상황과 내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입니다. 하늘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나의 주변에 사람들과 상황을 판단하고 압도 당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영적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주적과 싸우기 위해 주적을 향하여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주변에 발 거는 사람들은 무시하는 영적 담대함이 하늘로부터 부어지기 원합니다. 진짜 싸워야 되는 나의 주적인 골리앗을 향하여 나의 싸움의 모든 것을 거는 거룩한 백성 되게 도와 주옵소서. 이 거룩한 영적 진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선명히 부어 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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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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