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해 피난 길에 오르는 상황을 계속 증언합니다. 겉으로 봐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처지이며 위기와 어려움이 가득한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영적으로는 다윗왕이 그동안 무뎌졌던 영적 감각을 회복하며 광야 정신으로 민감해지는 축복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광야 길을 다시 나아가면서 다윗을 믿음의 자리로 회복되며 영적인 반응으로 그 위기가 기회로 변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처한 다윗 왕이 보이는 영적인 두 가지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데 첫 번째는 어제 배운 나의 어려움과 위기 속에 나를 찾아와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을 향한 영적 반응입니다. 므비보셋의 하인이었던 시바를 통하여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상황과 환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상황과 환경을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절대절명의 위기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상황이라도 도움이라고 무조건 받지 않고 그 도움을 주고 호의를 줄 때 그 뜻이 무엇이고 그 동기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바른 반응을 보이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또 하나는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나를 모욕하고 저주하고 등 돌리는 사람들을 향한 영적 반응입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위기와 어려운 가운데 영적 반응을 보이며 살아야 할지를 깊게 말씀으로 새기기 원합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나에게 회복되는 영적 민감함과 영적 반응이 나를 살리는 은혜로 다가오기를 원합니다.
내가 위기와 어려움에 처할 때 나를 대놓고 저주하고 모욕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시므이입니다. 내 처한 상황이 너무 큰 위기이고 어려움인데, 더 힘들게 하는게 누구냐 하면 바로 시므이와 같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마찬가지로 이런 시므이와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내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돌을 던지며 저주하고 나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이익을 취하기 위해 오면서 도움을 주는 척, 찾아오는 사람들도 힘들고, 아예 나를 대놓고 저주하고 욕하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너무 힘듭니다. 시므이가 다윗왕을 대놓고 저주하고 욕하는 내용은 아들이 등 돌려 배신하고 너를 죽이려 하는 것은 다윗이 사울왕가를 배신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저주하는 겁니다.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와서 다윗왕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가 힘이 없어지고 도망자 신세가 되니까 이렇게 벌떼와 같이 몰려와서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내가 좀 힘이 있고 가진게 많을 땐 옆에서 좋은 말만 하다가 내가 힘을 잃어버리고 위기와 어려움에 처하면 갑자기 썰물과 같이 빠져나가는게 인간입니다. 떠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애매한 말로 억울한 말로 나를 생채기 나게 하고 있는 말 없는 말 섞어서 나를 저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렇게 시므이가 저주하고 모욕할 때 다윗왕은 소위 말하는 리액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신하 한 사람이 당장 가서 저 놈의 목을 베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그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려는 반응입니다. 안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데, 지금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저주하고 돌을 던지면, 거기에 단칼에 죽여버리고 싶은 억울함을 폭발시키고 싶어하는 열망을 누구나 갖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데 나를 건드려? 그러니까 너 죽고 나 죽자..그러면서 폭발시키는 것,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단칼에 죽이고 싶고 억울함을 폭발시키고 싶은 그 열망을 억누르면서 이것을 어떤 시선으로 보냐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 깨우게 하시는 찌르는 말씀, 하나님의 채찍질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을 통하여 감정이 상하고 리액션을 하는 대신, 내가 성장하고 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민감하게 듣는 기회로 삼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복하지 않고 참으면서 다윗이 주님께 구했던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이고 나를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하나님께 주시는 그 은혜로 시므이에게 반응하기 때문에 당장 보복할 수 있음에도 보복을 하지 않고 비난과 저주를 다 감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이의 저주와 욕을 통해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이고, 얼마나 긍휼을 받아야 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고 해석하며 보복하지 않는 영적 반응을 보이는 것, 이게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비판하고 비난하는 거 좀 쓴소리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것을 들으면 당장 리액션을 하려 하고 힘이 있으면 보복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사역하고 일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안 좋은 얘기 한마디 하면 다 그냥 내려놓고 안한다고 미련없이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칭찬을 듣지 못할 망정 안 좋은 소리 들으려고 하는 거 아니라며 바로 감정적 반응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 특별히 말로 나를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보복하고 부딪치고 폭발하고 싶은 그런 열망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보복하지 않고 감정적 반응으로 부딪치지 않고 인내하고 웅크려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시는 시간이라고 믿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도구로 삼는 반응이 기적입니다. 영적으로 깊어진다는 건 좋은 일과 선한 일을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특별히 나에게 비판하고 비난하고 나에게 돌을 던지고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 리액션이나 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영적으로 깊어지는 사람은 그 비판과 비난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변화를 이끄시기를 원하시는가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고 변화시키는 도구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그 영적 반응이 우리를 내면이 깊고 단단한 인생으로 세워주시고, 위기가 기회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도의 위대함은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나타나는 영적 반응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 믿음이 강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위기와 두려움 가운데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중심, 이익 중심, 이 세상 중심을 넘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하나님 우선 중심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기초를 통하여 풍랑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로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를 비난하고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해 분노로 폭발하며 부딪치는 대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채찍으로 믿으며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시는 도구로 삼는 영적 반응입니다. 비판과 비난에 폭발하는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건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 같이 저와 여러분들을 건져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인생에 직면한 어려움과 위기는 결국 내가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변화시켜주시고 탈출시켜 주시는 영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위기와 고난 가운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하여 실망하지 마시고, 사람들을 붙드는 대신 하나님만을 붙들고 하나님의 선으로 갚아 주심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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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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