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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두 번의 여호와의 말씀이다…라는 선언을 통하여 심판과 회복이라는 놀라운 주제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판이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지에 대한 심판의 실체를 증언하고, 그 심판이 끝이 아니라 심판 뒤에 회복으로 세워 주실 것임을 약속으로 주십니다. 첫번째,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선언은 심판이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할지를 보여줍니다. 16장 앞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세 가지의 금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자녀를 낳지 말고 초상집에 가지 말고 잔치집에 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잔치집에 갈 필요도 초상집에 갈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직면할 심판이 그렇게 끔찍하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겁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에서 심판이 임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어부가 고기를 낚듯이 잡혀 죽게 되고, 포수들이 사냥꾼이 사냥을 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낚시줄에 고기가 잡혀가듯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사냥하듯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그 끔찍한 심판의 실체를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남유다 백성들이 그런 끔찍한 심판에 직면하게 되는가?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 나서 무거운 죄값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죄를 쌓아두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 이시자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다 들으시듯, 우리의 행위와 죄악을 다 감찰하시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나의 행위를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숨을 곳이 없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바라보고 계신다…내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내 죄악을 숨기지 못한다…이게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니까 하나님 앞에 죄악을 숨길 수 있다 착각하며 살아간 것입니다. 실천적인 무신론에 빠져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과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 죄값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여러 죄악 중의 특별히 무거운 중죄 두 가지를 명시하시는데,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한 것으로 가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무겁게 다루시는 죄악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역죄라는 것입니다.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죄악의 본질,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한 것으로 가득 채운 그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고 요새이시며 피난처 되심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힘도, 요새도 아니기에, 나의 피난처가 아니기에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을 하나님과 겸하며 붙들고 섬기는 것, 이것이 남유다 백성들의 죄의 본질이었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되는 내 인생 내가 지키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지키려 하는데, 내 인생을 내가 지킬 수 있습니까? 그게 안 되니까 결국 신 아닌 것들을 신으로 붙들고 살면서 내 인생 내가 지키려고 그렇게 발버둥치는 삶이 하나님 앞에 불신앙이자 대역죄였습니다. 이 첫 번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남유다 백성들이 직면하게 될 끔찍한 심판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죄에는 무거운 값이 있으며 죄에는 대가가 있으며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죄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고, 나의 행위를 살피시는 주님의 눈이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살 길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주신 여호와의 말씀은 그 끔찍한 심판이 끝이 아니라 그 심판 뒤에 회복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는 것은 그들의 인생을 건 신앙 고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정체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현재형으로 기억하는 것인 것 그 기억의 핵심은 출애굽이었습니다. 출애굽, 우리를 애굽의 땅에서 건져 내시고 인도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는 게 그들의 오랫동안의 신앙고백 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기억할 때 늘 이 출애굽 사건을 삶에 중심에 두고 애굽 땅에서 구원내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는 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판 이후 포로로 잡혀 흩어진 후, 앞으로는 그 출애굽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신 북방 땅과 쫓겨났던 모든 나라로부터 건짐을 받아 돌아오는 출 바벨론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 선언하시는 겁니다. 이 말은, 심판 이후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들을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다시 인도하여 드릴 이것을 고백할 때가 온다는 회복의 선언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출애굽을 기억했던 과거의 이야기가 이제 나라에서 쫓겨나 바벨론으로 끌려가 신음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통하여 출 바벨론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소망의 약속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냐 하면 심판을 하셔서 너희는 죄값 받아라… 꼴 좋다 맛 좀 봐라… 이러고 끝내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심판으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망하는 게 끝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한 심판을 경험한 후에 다시 회복하여 돌아오게 될 날이 있을 것임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사실 남유다는 지금 현재 죄에서 돌이키지도 않아 임박한 심판을 직면하기 직전입니다. 아직 회개하고 돌아오지도 않은 남유다 백성을 향하여 심판 뒤에 회복이 무엇일까를 미리 알려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복음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죄의 실체를 잊지 않고 죄에 대한 심각성을 늘 붙들고 살아야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일 정도로 죄값은 무거운 것임을 잊지 않고 그 끝은 심판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겁니다. 동시에 그 심판이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소망의 약속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겁니다. 세상에 결박되어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예수 십자가 보혈로 출 세상하게 하셔서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이 아닌 하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는 하늘의 백성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붙들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성도로서의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출애굽, 출바벨론, 출세상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이여 살아갈 길이라는 것을 선명히 알려주고 계신 것이죠 출애굽을 기억하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찾았던 백성, 출 바벨론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기억하였던 포로기 후기 백성, 지금은 십자가 은혜로 주신 출 세상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성도, 저와 여러분들이 있는 겁니다. 출애굽 하게 하시며, 출바벨론 하게 하시며, 십자가를 통하여 출세상 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 사랑을 바라보며 회복과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망각하면 그 끝은 심판과 멸망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힘과 요새로, 피난처로 고백하지 아니하면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을 붙들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고 살아가는 대역죄를 범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출애굽을 시키신 하나님이시며 출바벨론을 하게 하신 하나님이며, 출세상을 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출바벨론, 출세상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기억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 하나님만을 믿고 고백하며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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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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