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15장에 이어 가깝고도 먼 나라인 모압에 대한 심판의 예고와 경고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하고 임박한 심판 가운데도 하나님을 붙드는 대신, 세상과 사람들을 붙들고 살아간 그들을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동시에 오늘 말씀은 이런 심판의 예고와 함께 그들에게 피할 방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너희가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두 가지를 알려주십니다. 첫번째, 모압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곳으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와 하나님을 찾는 백성 되는 것이 사는 길인 겁니다.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양을 드리라…는 말은 모압이 북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때를 상기하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북 이스라엘 아합 왕에게 모압이 조공으로 양털을 깎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털을 깎아 보내는 그런 조공을 드리는 게 아니라 딸 시온산으로 어린양을 드리라는 겁니다. 이 말은 바로 어린양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겁니다. 심판을 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 되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 모압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아와 하나님을 찾고 예배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 모압이 피할 수 있는 방도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도망 올 때 그들을 보호하고 품어주는 것입니다. 이게 어떤 배경이가 하면 앗수르로 인해 북이스라엘이 망하니까, 다음 타겟인 남유다에는 많은 동요가 있었고 피난길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 할 것 같이 많은 백성들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를 피해 도망하는 피난민들이 모압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들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쫓겨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숨겨주고 보호하며, 너와 함께 있게 하라고 명하신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함께할 때 너희에게 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주신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압에게 반복하며 강력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의 예전 불순종의 흑역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모압은 가는 길을 막았고, 그들을 방해하고 저주했던 과거의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앗수르를 피해 쫓겨온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늘을 만들어주고 숨겨주고 그들을 보호하고 함께 해주는 것이 모압이 심판에서 벗어나 살 길임을 알려주신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압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경고와 심판, 그 심판을 피할 길을 농담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며 하나님 말씀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겁니다. 6절 말씀에 네 번 이상이나 반복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모압의 교만, 거만입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말할 정도로 그들은 교만에 쩔어 살았고 거만함에 찌들어 산 겁니다. 모압은 임박한 심판을 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겁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피할 길을 알려주시는데도 그 말씀 앞에 거만한 겁니다. 교만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신 경고로 들리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의 경고와 찔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배웠지만 모압 백성들이 눈에 좋은 대로 판단하고 선택한 결과, 내 눈으로는 최고라고 고른 결과가 결국 소돔과 고모라 아니었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눈에 좋은 대로 판단한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게 결국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지는 앞잡이의 결과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이키지 못하고 거만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며 농담으로 여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모압의 교만하고 거만한 마음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하나님이 내미신 손길을 거절하며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백성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모압에게 이제 남은 것은 흐르는 피눈물과 멸망밖에 없게 된 겁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그 피할 길을 거절했고 끝까지 교만해서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으니까 결국 남은 것은 무너지는 것과 멸망하는 것 밖에 없는 겁니다. 모압에게 남은 건 흐르는 피눈물밖에 없습니다.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고, 슬퍼하고 심히 우는 겁니다. 날아 다니는 새가 둥지를 잃고 흩어지듯, 모압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떠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또한 모압에게 남은 것 철저하게 무너지고 망하는 심판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대표로 오늘 말씀에는 포도원이 등장합니다. 모압에게 있어서 포도원은 그들의 특산물이자 그들의 주된 수입이었습니다. 그 포도나무과 포도원이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 나무가 마르고, 가지가 부러지며, 포도원에 일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처럼 교만과 거만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끝까지 마지막 때를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눈물과 애곡이며 모든 것이 무너지는 심판과 멸망일 뿐임을 경고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런데도 모압은 끝까지 정신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우상의 산당에서 피가 나도록 봉사하고, 하나님의 성이 아니 자기 자신을 위해 세운 성에 나가 기도하는 겁니다. 겉으로 봐서는 굉장한 신앙의 열심과 헌신이 있고 기도가 있는 것 같지만 끝까지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에게 찾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적 열심이나 정성, 기도에 대한 헌신은 중요합니다. 타종교를 가도 종교적인 열심이나 정성을 다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잘 한다는 핵심은 나의 열심과 정성이 아니라 내 믿음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열심과 정성이 바른 믿음의 대상에게 드리는 게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내가 하는 종교적 결심이나 내가 하는 정성이나 헌신 자체는 아무런 쓸데 없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만큼 한다라는 종교적 열심과 정성을 끝까지 붙들었던 모압 백성은 다 소용 없는 일을 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 세상에서 심판의 예고와 함께 피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 심판을 피할 길은 유일한 예배 대상 되신 하나님에게 돌아와 붙드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나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다 똑같고,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알려주시는 피할 길이 언제나 똑같다는 것이죠.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에게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며 그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붙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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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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