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른 복음에 대한 경계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란 유사 복음, 가짜 복음이라 할 수도 있고, 속된 말로는 짝퉁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진짜 가짜를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가짜가 유행합니다. 가품을 정말 너무 똑같이 만들어서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정말 미세한 부분의 차이로 진품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명품이면 명품일수록 가짜가 많이 나오고 유사품이 많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순전한 진짜 복음이 있는데 복음이 명품이기 때문에 거기에 자꾸 유사복음, 가짜 복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유사복음이나 가짜 복음은 사람들이 대충 봐 가지고는 차이를 잘 모르도록 비슷합니다. 그래서 가짜에 속고 유사품에 마음을 쏠리게 하는 이런 다른 복음이 너무나 빨리 갈라디아 교회에 퍼져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하는 겁니다. 순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부터 시작되고, 악한 세대에 결박되어 소망 없는 나의 삶에 대한 철저한 인정, 나는 아무런 자격이 되지 않는 존재임을 인정함으로부터 복된 소식이 열립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며 그분의 죽음은 단 한 번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다 덮고도 남은 충분한 복음의 은혜임을 감격으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 복음의 선물을 감격으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며 그분께 영광 돌려 내가 예수 이름과 예수 공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고,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순전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인생을 걸고 전한 이 순전한 복음을 변질시키는 다른 복음이 자꾸 교회 안에 들어와 젖어들고 물타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그건 복음을 아예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믿긴 믿는다는 겁니다. 아예 나는 예수 십자가를 믿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복음을 분별하는 게 쉽습니다. 그런데 이 다른 복음 유사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는 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충분하지 않다는 논리를 가져오는 겁니다.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은혜가 불충분하다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다가 플러스 알파를 계속 더하는 겁니다. 특별히 이방 기독교인들, 유대교 배경이 없었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으로 새 사람이 되는데 십자가 복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율법도 지키고 착하게도 살아야 되고 안식일도 할례도 지켜야 되고 이런 것들을 자꾸 구원의 전제 조건으로 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 맞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떻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나…. 우리같이 할례도 하고 율법도 지키고 안식일도 지켜 되는 것이라는 이 구원받을 자격을 논하고 구원받을 조건을 더하는 이 다른 복음이 자꾸 갈라디아 교회에 젖어들고 먹혀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특별히 이 유사복음, 다른 복음이 이렇게 빨리 갈라디아 교회를 변질되고 왜곡되게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도 바울은 충격을 받은 거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순전한 복음이 쉽게 변질되고 왜곡되는 대해서 너무 놀란 것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에 민감하고 눈에 보이는 행동을 따라 나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을 늘 좋아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원인이 전적인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꾸 구원받은 자격을 따지기를 좋아해서 구원받을 만한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좋아합니다. 구원의 공로와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그런 열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충분하다는 이 순전한 복음 대신에 거기에 내가 십일조 드리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헌신하는 것이 구원의 양념이 되고 자격조건이 되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에 자꾸 유사복음, 다른 복음을 만들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갈라디아 지방에만 있었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우리가 계속 경험하게 되는 큰 도전이라는 겁니다. 정신차리지 아니하면 우리가 순전한 복음에 자꾸 물타기를 하고 왜곡과 변질로 나아가기 쉬운 겁니다. 우리 죄성은 구원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하고 구원의 자격조건을 내가 한 무엇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열망이 계속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아요. 그 정도 차이를 가지고 뭐 그렇게 심각하게 그러는가… 그 정도 차이가 뭔 그리 큰 문제인가? 그런데 그 정도 차이가 뭔 문제인가가 아니라 큰 문제이며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라는 것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증언하는 겁니다. 우리는 정신차리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다른 복음과 유사 복음을 만들어 왜곡과 변질로 물타기를 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충분하고 나에게는 어떤 이유와 원인도 자격 조건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믿지 아니하면 우리도 갈라디아 교회에서 만연했던 그 유사복음, 다른 복음에 젖기 쉽습니다. 유사 복음 가짜 복음은 구원으로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 90% 나 10%로는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복음이 변질되면 구원이 사라지고 많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복음은 하나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 100%... 예수님에게 구원의 원인이 있음을 믿고 고백하는 100%...밖에 없는 겁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유사 복음, 가짜 복음은 진짜가 아니고 구원으로 이끄는 복된 소식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내가 천국 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십자가의 능력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붙들고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순전한 복음을 분명히 붙들고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왜곡과 변질로 된 다른 복음을 붙들고 복음에서 이탈되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른 복음은 없다는 사도바울의 이 분명한 외침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나에게는 구원받음의 이유와 원인이, 자격과 조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믿기 원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여러 영적 습관들이 그 어떤 것도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만들려 그러면 우리는 은연 중에 우리가 다른 복음을 만드는 것이고, 복음의 물타기를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왜곡과 변질로 나아가는 이런 유사복음, 다른 복음은 우리와 비슷하고 좋아하고 하늘에서 온 천사같이 느끼는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늘 깨어 경계하며 분별해야 합니다. 내 어떤 행위도 내 어떤 공로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십자가 은혜만이 100% 구원의 원인임을 선명히 믿으십시오. 순전한 복음에 덧칠하지 말고 구원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십시오 가장 순수한 복음이 변질될 때 가장 추해지고 왜곡되며 이것을 통하여 구원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유사 복음과 다른 복음을 경계하며, 100% 예수님의 공로로, 100% 예수 보혈로, 100% 예수 이름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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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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