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고 알려져 있고, 14장은 은사장으로, 15장은 부활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의 참 보물과 같은 말씀들을 고린도전서에는 품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우주적이고 역사적이며 언약적 사건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놀랍게 선포하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놀라운 사건을 바라본 증인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부활 후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보이셨고 500명의 형제에게도 보이셨고 나같이 미천한 자에게도 보이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부활 신앙은 약속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약속대로 부활하셨다는 사실만 믿는 게 아니라 그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나를 구원하시고 생명 주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부활 신앙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영적 생활과 영적 환경이 무엇인가를 두 가지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근거로 한 영적 생활은 바로 나 자신이 지극히 작고 자격 없음을 철저히 인정하는 영적 겸손입니다. 그 놀라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나를 바라보니까 나는 지극히 작고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는 자라는 것을 절감하는 것, 이게 영적 겸손입니다. 나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내 자격과 조건은 모두 무너뜨리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영적 겸손입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사건입니다. 나에게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으며, 나에게 소망을 두지 않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천국 간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나에게는 구원받음에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고백하며 살아가는 자가 바로 신앙 생활 제대로 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로 자기가 사도 중에 작은 자라고 여겼고 사도로 불림을 받기도 감당하지 못할 자격과 조건이 없는 자라고 철저히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 본질적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자라는 것을 평생 마음의 짐으로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에게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왜 약속대로 부활하셨습니까? 나에게는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자격도 없는 것이죠. 이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게 영적 겸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영적 겸손의 태도가 있는 겁니다. 부활 신앙을 철저히 붙들면 붙들수록, 내가 작은 자이며, 자격도 조건도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닫게 합니다. 반대로 내가 자격이 있고 조건이 있고 내가 이렇게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 겸손과 거리가 먼 사람이고 영적으로 둔감해지는 자가 되는 겁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의 연수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나에 대한 소망을 내려놓고 나는 자격도 조건도 없음 작은 자임을 철저히 고백하며, 당연함을 넘어서는 영적 겸손을 견지하며 신앙 생활 하기 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증언하는 부활 신앙을 기초로 할 때 나오는 영적 환경은 바로 은혜의 환경이라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 유명한 고백과 함께 10절 한 절에 은혜가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 수고하고, 내 수고도 내가 한 수고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철저히 고백합니다. 겸손과 은혜, 이게 부활 신앙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 본인의 고백을 통하여 선명히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은혜로 영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환경에 나를 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고 한결같은 그 사랑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안에 있을 때 자유로운 거지, 물밖에 나오면 조금 있다 숨 막혀 죽게 되는 것처럼, 성도인 내가 은혜의 바다 가운데 있을 때만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면 영이 아닌 육이 활성화되며, 육적으로 민감한 삶이 되어, 영적인 것이 모두 마비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경시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바다에 내가 있으면 끊임없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전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일방적인 사랑을 내가 취하며 맛보며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영적으로 눌리지 않고 결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해지고 영적으로 깨어나며, 그 은혜의 바다 가운데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영적 환경을 은혜로 두고 사는 성도의 특징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이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의 자격 없음 조건 없음을 바라보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자를 살리시 고 건지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의 무조건적인 일방적인 사랑을 바라보며 내가 은혜 가운데 뛰놀고 살아가는 영적 환경에 나를 두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삶에 집중하게 되는 게 무엇입니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에 집중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부름받은 증인의 삶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파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무엇에 집중하게 되는지 압니까? 내가 한 일에 집중하게 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게 모든 내 삶에 관심이 되어 버리고 내 생각의 전부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내가 한 일, 내가 이룬 일, 세상에서 일어난 일에 압도당해 그 안에 결박되어 살아가는 겁니다. 부활신앙을 철저히 붙드는 성도는 이것을 넘어서 어떤 삶을 사도록 부름받았습니까?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넘어 하늘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목하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내가 한 일을 넘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붙들고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자꾸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고 내가 한 일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집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영적 겸손과 은혜의 삶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영적 훈련을 한다는 것은 나를 이 은혜의 환경 가운데 두는 의도적인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환경 가운데서만 마음껏 헤엄치고 뛰놀 수 있음을 분명히 알고 은혜의 영적 환경을 조성하십시오. 내 마음과 생각을 자꾸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 내가 한 일에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 하나님이 하늘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바라보고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열망하십시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고 지금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며 앞으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까에 집중하며 관심을 가지며 주목하는 삶, 바로 영적 겸손과 은혜의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유일한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붙들고 그의 은혜를 의지하여 가는 것이죠. 나의 나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내 모든 삶의 수고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다…이 고백이 사도 바울의 고백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실체적인 고백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약속대로 죽으시고 약속대로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깨고 나를 부활하신 그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너무 작고 자격도 조건도 없는 정말 소망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영적 겸손으로 엎드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와 그가 하신 일을 바라보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영적 선순환이 우리 삶에 풀어지며 영적 겸손과 은혜의 영적 환경 가운데 나를 두면서 오늘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붙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August 2026
카테고리 |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