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다가올 그 심판의 날에 대한 끔찍한 죽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남유다에 대한 이야기, 뒷부분은 남 유다에 대해서 사망 선고를 하시고 심판을 내리신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잡지 않는 교만한 모습은 “ 우리가 어디로 가야 나아가리요…” 묻는 그들의 질문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께 정말 몰라서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해서 “저희가 길을 모르니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아주 뻔뻔하고 당당하게 묻는 겁니다.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도 우린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어떻게도 상관없어. 하나님의 심판 같은 거 어디 있어….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인데…우리가 어디로 가도 상관 없는 거 아닙니까….라고 조롱하듯 묻는 겁니다. 양심의 화인을 맞아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어디를 향해 질주하는지도 모르고 임박한 심판 가운데 마지막 기회마저 날리는 겁니다. 양심에 화인 맞고 교만에 쩔어 사는 남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며 포로될 자는 포로됨으로 나아갈지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데 죽음과 칼의 전쟁과 기근과 포로됨으로 그들을 심판하겠다는 엄중히 선언하시는 겁니다. 전쟁 중에 칼에 맞아 죽던지, 기근에 굶어 죽던지,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죽든지 너희는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남유다 백성들이 돌아올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심판만 남게 된 결정적 사건, 방아쇠를 당이게 되는 trigger point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므낫세 왕의 악행입니다. 모든 기회를 날려버리며 남 유다의 심판과 사망 선고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히스기아의 아들 므낫세 왕 때문이라는 겁니다. 히스기아 왕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통치한 왕이자 하나님의 은혜로 15년을 더 산 은혜의 왕이죠. 그런데 그 아들 므낫세는 은혜의 왕 아버지와 정반대로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므낫세가 어느 정도로 악한 왕이었냐 하면 북 이스라엘의 어떤 왕보다도 더 악한 왕이었으며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내어주어 죽게 할 정도로 끔찍한 왕이었습니다. 그 므낫세의 하나님을 향한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 뿐 아니라 온 백성이 악한 길로 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므낫세 왕의 이런 끔찍한 악행과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당시 모든 남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망 선고를 하시며 너희는 끝났다는 겁니다.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리고 남은 건 심판 밖에 없는 백성이라는 겁니다.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키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남유다 백성들을 엄중히 심판하시며 벌하시는 겁니다. 네 가지로 심판하신다는 건 동서남북이 다 막혔다는 것으로 빠져 나갈 구멍이 하나도 없이 어디를 가도 죽는 엄중한 심판입니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어디를 가도 심판 받는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 말씀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칼과 기근과 포로됨으로 죽게 하시고 다 흩어 버릴 것을 선언하시는 겁니다.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재앙이 너희에게 찾아와 너희를 완전히 벌하게 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그 완벽한 재앙과 심판이 찾아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불쌍히 여기는 자도, 울어 줄 자도, 평안을 물을 자도 없는 날이 온다는 겁니다. 특별히 여기서 평안이란 날이 샬롬으로 그냥 잘 먹고 잘 지내며 이 땅에서 그냥 호위 호식하는게 평안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하심 자체가 샬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 자체가 샬롬이고 평화이고 복이고 형통입니다. 그렇기에 평안이 사라진 삶이란 화와 저주의 삶이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도 샬롬이 있을 수 있고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도 샬롬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건 평화가 아니라 저주와 화의 인생인 겁니다. 남유다에 샬롬이 없다는 건, 하나님의 임재가 백성들 중에 더 이상 없게 되고 하나님이 떠나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임재를 거두어 가신 것이 샬롬이 사라진 화와 저주의 삶,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건 하나님이 가져오실 엄중한 심판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냐면 하나님은 너무 지쳤다..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마음을 하도 많이 바꾸니까, 하도 하나님 말씀을 안 들으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바라보기에 너무 지쳤다…어느 정도 하나님이 돌아올 기회를 주셨는지 다 아시지 않습니까? 출애굽으로 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으며 그들의 왕이 되셨으며 그들을 기다려 주셨는데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보호하고 인도하신 왕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며, 하나님께 범죄하고 우상 숭배하며 무너지는 그런 불순종과 반역에 하나님은 이제 지치셨다는 겁니다.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리고도 문제 의식 조차 없는 양심에 화인 맞은 남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며 이제 내가 지쳐서 하나님의 평강을 거두어 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신 축복을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거두어 가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남유다 백성들에게 남는 건 저주와 화 밖에 없고 심판 밖에 없는 겁니다. 남유다 백성들을 끊는다…멸한다… 이게 전형적인 하나님의 심판 언어입니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너희를 끊고 너희를 멸하시겠다는 겁니다. 그 본질적 이유는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그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기에…. 앞뒤 좌우가 동서남북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재앙과 심판만이 그들에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바꾼다는 게 회개 아니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길로 하나님을 향한 길로 내가 바꾸는 것이 회개이자 돌이킴입니다. 회개는 내가 가는 길을 바꾸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길로 돌이 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 아버지의 길로 돌아가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회개인데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무리 불러도 자기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돌아서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끝은 멸망이고 심판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죠. 이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말씀 듣고 돌아올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죠. 돌이킬 기회가 있으며 하나님의 길로 돌아설 기회가 우리에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인생에서 하나님을 향한 인생으로 돌이키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기다리시고 부르시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그것을 멈추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거두어 가시는 날이 오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거두어 가시는 날이 와, 죽음과 심판밖에 남는 게 없는 때가 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유다 백성들을 반면교사 삼아, 끔찍한 전쟁이 임하고 기근이 임하고 죽어 모두 흩어지는 그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며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며, 주의 길로 나아가는 하나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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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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