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손이 세상에 길들여져 세상 방식으로 결정하며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며 무너지는 영적 하향곡선을 계속 말씀을 통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한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식 잔치에서 분노를 통해 30명을 쳐죽이고 옷을 빼앗아오는 것과 결혼잔치 도중에 혼자 돌아오는 잘못된 결정을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분노가 이끈 즉흥적 결정이 가져온 또 다른 잘못된 결과,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 속에 드러나는 세상방식의 결혼관에 대해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삼손은 결혼 잔치 중이었는데 홧김에 그냥 혼자 집으로 돌아와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블레셋 장인어른 될 사람이 어떤 결정을 했는가 하면 자신의 딸을 그 결혼식 잔치에 온 삼손의 친구에게 아내로 그냥 줍니다. 이게 바로 블레셋 사람들을 통해 세상방식에 길들여진 결혼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끄심과 계획하심에 대한 믿음도 없고, 거룩함과 신중함도 없고, 심각한 고민도 없는 합법적 동거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결혼관 말입니다. 내 눈에 좋은 사람 만나 그냥 동거하고 사는 게 결혼이고 맘에 안 들면 언제든지 헤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삼손이 그렇게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간 직후 결혼이 예정된 자기 딸을 친구한테 그냥 줘버리고 끝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화가 누그러지고 삼손이 아주 큰 선물인 염소 새끼를 사가지고 처가집으로 다시 찾아갑니다. 자신의 아내를 보러…자기가 홧김에 잘못 결정한 것이 얼마나 잘못 돌아갔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돌아와서 내 아내랑 다시 결혼해서 잘 살겠다는 거죠. 본인은 그렇게 한번 일이 해결될 줄 알았던 겁니다 삼손은 자기가 홧김에 그런 잘못된 결정을 하고 집으로 가 버렸지만 그 여인은 언제나 내 아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장인 어른이 집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자기 딸은 이미 버스가 떠나 다른 사람한테 시집을 가버린 거죠. 이제 더 이상 네 아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손이 홧김에 그냥 가버려서 내 딸 더이상 안 사랑하는 줄 알고, 미워하는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거죠. 자기는 홧김에 그냥 나왔는데 홧김에 결혼식을 깽판 치고 왔는데 이런 식으로 일이 벌어질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분노로 즉흥적인 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착각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잘못된 결정을 하면서 상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그 다음 말이 더 우리에게 주목하고 마음의 새겨야 할 말입니다. “그 동생이 그보다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냐…너는 그를 대신해 이를 취하라.” 전형적인 세상 방식의 결혼관이 드러나는 겁니다. 너 우리 큰 딸하고 결혼 하려는데 큰 딸은 이제 결혼해서 버스 떠났으니, 작은 딸이 사실 더 이쁘니까 대신 결혼하라는 겁니다. 꿩 대신 닭이고 A아니면 B로 그냥 결혼하라는 겁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 물건과 같이 골라 대신 가지는 게 결혼인 셈이지요. 즉흥적이고 자기 마음대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하는 세상 가치관의 결혼, 그 전형적인 모습인 셈입니다. 문제는 거룩하게 구별된 삼손도 세상 방식에 길들여진 결혼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결혼 전에 기도했다는 부분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분노가 이끄는 대로 홧김에 돌아오고…어떤 신중함과 거룩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세상적 가치에 그대로 젖어 있는게 삼손인 것입니다. 지금 그 블레셋의 결혼관을 아주 처절하게 삼손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방식에 길들여지면 많은 것이 무너지지만 특별히 결혼이 무너집니다. 세상 가치에 물들어 결혼은 눈에 좋으면 그냥 즉흥적으로 만나 결혼하고 싫으면 즉흥적으로 헤어짐을 반복하면, 결혼은 무덤이 되고 결혼은 지옥 맛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결정이 나 자신이고 즉흥적이며 물건 고르듯이 흥정하고 이거 아니면 저것으로 하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은 우리에게 올무가 되고, 피해야 할 것이 되며, 결혼이 축복의 도구가 아니라 저주와 눈물의 도구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블레셋 사람들의 전형적인 결혼관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 방식에 길들여진 결혼관에 우리 성도들도 철저히 길들여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가치관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는 우리는 이런 가치관과 기준으로 살아가는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그냥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내 눈에 보기 좋아 같이 동거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즉흥적으로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이라고 정하는게 아니라, 누구 대신 누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대신 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결혼은 거룩한 일이며 남자와 여자가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즉흥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아주 신비로운 거룩한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결혼과 연결시킬 정도로 결혼은 신앙 생활에 있어 중요한 삶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거룩하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며 말씀이 가르치는 결혼의 본질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결혼은 올무가 아니고 결혼은 지옥 맛보기의 현장이 아니고 결혼은 피해야 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됨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살아내는 그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신비이자 하나됨을 경험하며 예수님을 중심에 두는 거룩한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거절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바른 가치관과 기준을 붙들고 결혼을 살아내는 힘과 은혜를 간구하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세상 방식에 길들여지는 대신에 주님께 길들여지며 주님 은혜에 머무는 결혼이 되기를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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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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