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윗왕은 고개를 들 수 없고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상황입니다. 왕으로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던 다윗왕 이었지만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당하여 피난길에 오르는 그의 마음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를 배신하고 칼을 꼽는 거는 그래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배신하고 등의 칼을 꼽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아픔과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피난 가는 모습은 지금 다윗의 심정이 어떤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서 당하는 위기와 어려움, 참담한 상황 가운데 다윗왕이 보여주는 영적 반응을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이 캄캄해져서 눈에 보이는 것에 압도당하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합니다. 나의 도움과 필요가 된다면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붙들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압살롬을 피해 피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 다가 왕과 함께 피난 가려고 올라왔습니다. 누가 봐도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잘못한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했다는 것이 명확하기에, 우리는 피난 가는 다윗왕을 따라 하나님의 언약궤가 같이 가야 되겠다며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궤가 자신과 함께 간다는 것은 이 절박한 위기 상황에 다윗에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힘입니다. 자기 아들에게도 배신당하여 도망가는 피난 길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나와 함께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겠습니까? 더 나아가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장악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궤가 다윗 왕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며 정통성과 정당성이 다윗에게 쏠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왕의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궤가 피난을 같이 간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힘과 위로이자, 지푸라기라를 붙드는 심정을 넘어 재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궤가 자기를 따라오려고 제사장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 당연한 반응은 덥석 그 기회를 물고 잡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 같이 따라와서 함께 한다니까 얼마나 내가 힘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하나님은 당연히 함께 가야지요….이게 일반적인 반응이고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다윗은 나만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상황만 바라보는 뻔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일 먼저 바라보는 영적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위해 가장 귀한 일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가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고려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위기 상황 가운데이 눈앞이 캄캄해 지는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내 상황의 어떠함에 모든 것이 쏠리는 대신, 하나님의 어떠하심…그게 결정에 최우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도움과 힘이 되는 상황이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의 궤는 나를 따라오면 안 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셔야 한다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궤가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이 어려워지고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 때문에 존재하는 분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나에게 도움을 주시기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하나님이 나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때문에 존재합니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믿기에, 아무리 큰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분명한 영적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내 목숨이 사라지고 위험해지는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고백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반응의 이유는, 지금 나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는 언약궤 나와 함께 피난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궤가 있는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한 본질임을 바라본 것입니다. 나 중심 나의 필요와 원함 중심을 넘어서 왕으로서 백성들의 필요와 보호를 먼저 바라보는 분명한 우선순위를 붙드는 왕이 된 것입니다. 예전에 다윗이 도망자 신세로 사울왕에 쫓겨다닐 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두 번의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눈 딱 감고 그 사울왕을 죽이면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눈앞에 사울왕을 한 번에 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그냥 흘려보냅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내 필요와 원함을 넘어 하나님이 어떠하신가를 먼저 붙들고 하나님의 기준을 먼저 붙드는 영적 반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반응을 붙드는 위대함이 다윗왕을 이렇게 놀랍게, 지속적으로 쓰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흠이 많고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께 계속 쓰임 받으며 왕으로서 설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면, 인생의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그는 오히려 영적으로 더 민감했었고 영적인 반응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계기를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온전한 믿음의 자리를 회복한다는 것은 인생의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내 상황 중심과 필요 중심을 넘어 영적 반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먼저 붙들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바라보는 기적이 경험되는 것입니다. 나의 필요와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이 너무 귀합니다.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 너무나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를 지켜 주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뭐냐면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구이고, 주님이 내 삶의 목적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 필요가 이만큼 중요하고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필요와 나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수단화 하거나 도구화하지 않겠습니다…는 고백을 철저히 붙드는 것입니다. 나는 끝까지 어려움과 아픔과 위기 가운데도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내가 존재합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는 영적 반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나에게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간절한 필요와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넘어서야 되는 큰 위기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의 기도 제목도 내 위기도 내 어려움도 너무나 긴급하고 중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두는 뻔한 반응을 넘어서며 하나님을 내 삶의 목적으로 두는 영적 반응으로 나아가십시오. 위기와 여러움 속에서도 나 중심, 상황과 이익 중심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수단화 하고 도구화 하는 뻔한 결정을 넘어서십시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온전히 내 삶의 목적이고, 내가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이 분명한 기준을 정확하게 붙들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모하십시오. 내 힘으로 이 영적 반응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하늘로부터 능력과 힘을 구하며 성령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그럴 때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위해 내가 존재함을 끊임없이 고백하며 나의 상황을 주님께서 풀어 주심을 믿으며 나아 가는 이 영적 결정이 나를 변화시키고 세우고 지켜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늘 목적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선명히 고백하는 힘을 하늘로부터 공급받으며 오늘도 영적 반응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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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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