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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장은 방언의 은사와 사용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굉장히 소중한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미성숙하며 교회가 분쟁과 분열을 계속하는 모순이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의 본질 중에 하나가 성령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주신 분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언의 은사가 내 개인적으로 은혜 받는데는 굉장히 좋았는데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리는데 이것이 교회 무질서를 가져오고 교회 안에 계층을 나누게 되며 특별히 자기 자랑이나 교만으로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며 교회 안에 분란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런 문제에 빠지지 않고 성경적 원리로 방언의 은사를 잘 사용하는 전제 조건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 덕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주변 사람들의 덕을 세우면서 방언의 은사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공예배로 모여 있을 때 그 예배에는 중요한 순서들이 있지 않습니까? 찬송, 즉 경배와 찬양이 있고, 가르치는 말씀인 성경 봉독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의 말씀인 설교 시간이 있고, 방언과 통역하는 이런 예배의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텐데, 그 예배의 모든 순서와 방언의 은사를 교회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라는 겁니다. 아무리 풍성한 은사가 있고 내가 은혜를 받는다 할지라도 공 예배 가운데 그것이 무질서하게 사용되면 예배에 폐가 되고 방해가 되며 교회에 덕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잘 사용하는 두 가지의 실천적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차례와 순서를 지키면서 방언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방언의 은사를 사용할 때 차례와 순서를 따라하라고 명할 정도로 그 당시 고린도 교회는 공예배 중에 방언의 은사가 순서와 차려도 없이 예배의 흐름을 방해하며 무질서하게 남용되었습니다. 대표 기도를 하러 올라왔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기도로 하는 겁니다. 혼자 기도할 때야 은혜 받으니까 좋은데 교인들을 대표해서 대표 기도를 하는데 방언 기도를 하니까, 대다수의 성도들은 무슨 기도를 하는지 모르고 소외 당하는 겁니다. 그것도 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방언 기도로 대표 기도하니까 여기저기서 갑자기 차례와 순서도 없이 방언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까 교회가 질서가 없어지고 이것이 공예배 가운데 은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덕이 안 되는 겁니다. 더구나 그 당시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파벌이 많아져 있었습니다. 전임 목사파, 후임 목사파, 베드로파, 예수파 등으로 막 나눠져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그 계파에 따라 또 이 방언의 이해와 색깔도 다르고 방언의 목소리도 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는다는 명분 아래 경쟁하듯이 내가 더 영적이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방언기도를 쏟아내는 이 무질서가 교회의 공예배 가운데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런 영적 혼란과 무질서 가운데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지침을 제시합니다. 공예배 중에는 반드시 차례와 순서를 따라 하라는 거예요. 지금이 방언 기도를 할 때인지 안 할 때인지, 내가 말할 때인지 잠잠해야 할 때인지, 나아갈 때인지 물러갈 때인지를 분별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회의하면 본인만 얘기하고 본인만 손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나만 말하면 된다는 마음에 배려가 없는 것이죠. 내가 두 번 말했으면 옆에 있는 분이 말할 수 있게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남을 위한 배려도 덕을 세우기 위해 차례와 순서가 있음도 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무질서해지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덕스럽지 못한 은사 사용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고 흔드는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교회에서는 차례와 순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겁니다. 나에게 성령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는데, 그 은사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신 은사가 나에게 은혜가 되면 된다는 생각을 넘어, 내 유익을 넘어 주변 사람과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우는 데 잘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방언으로 기도할 때 반드시 통역을 세우라는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때 방언의 기도는 회중석에 앉아서 혼자 기도하는 게 아니라 대표 기도 순서를 맡았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대표 기도로 올라와서 굳이 방언 기도를 그렇게 하고 싶으면 누구를 세우라는 겁니까? 옆에 통역을 세우라는 겁니다. 대표기도라면 회중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 기도는 교인들을 대표해서 하는 기도인데, 알아듣지 못하는 기도를 한다면 이거 안 된다는 겁니다. 회중석에서 같이 통성 기도할 때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일대일로 기도할 때, 그렇게 방언 기도하고, 대표성을 가지고 순서를 맡아서 기도할 때는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제가 강단에서 설교를 전하는데 성도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전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것이 은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대할 때도 대표성을 가지고 대표 기도를 할 때도 중요한 것은 내가 은혜를 받느냐 안 받느냐가 아니라 교인들을 대표해서 내가 기도하고 있느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덕을 세우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잠잠하라는 겁니다. 통역이 없는 방언 기도를 그렇게 하고 싶으면 자기와 하나님께, 즉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교회에서는 잠잠하라는 겁니다. 내가 받은 방언 은사가 성령님으로 받은 은사라는 것이 분명하면 그분의 뜻에 맞춰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 없는 방언,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방언,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는 방언을 사도 바울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소음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 겁니다. 방언이라고 얘기한 것이죠. 나만 은혜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넘어서 내 주변 사람들도 같이 은혜를 받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방언의 은사는 교회의 덕세움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질서 가운데 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방언의 은사는 항상 예언의 은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이 영적 질서와 우선 순위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사 사용은 기록된 말씀. 성경을 벗어나지 않고 말씀의 권위 아래 통제를 받으며 바른 질서와 우선순위 가운데 은사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비롯한 공예배의 순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야 되며 잠잠할 때면 잠잠하고 말할 때는 말하고 나아갈 때는 나아가고 물러설 때는 물러설 줄 아는 분명한 영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방언의 은사가 나에게 은혜가 되며 주변 사람과 교회에 덕을 세움으로 성령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은사를 통하여 주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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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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