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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하나님에게 딸과 같은 남유다 백성들이 아무리 부르짖고 외쳐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결국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진노와 심판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14장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과 함께 그들이 직면할 심판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구약 성경에 항상 세 가지가 하나님이 치시는 경고로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칼과 기근과 재앙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임하게 될 때, 공동체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와 나라를 경고하시는 일임을 알고 깨닫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남 유다 백성들을 치심으로 온 땅에 상상할 수 없는 가뭄이 임합니다. 요즘에도 가끔씩 물이 없는 가뭄 때문에 고생하고 어려워하지만 요즘에 경험하는 가뭄과 고대 시대에 가나안 땅에서 경험하는 가뭄은 기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지금은 저수할 공간도 있고 뭐 수도도 나오고 여러 시설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 고대 시대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었던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전혀 지을 수 없는 땅입니다. 물이 그냥 쭉쭉 빠지는 땅이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셔야만 하늘을 바라보고 주의 은혜를 먹고 사는 존재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남 유다였습니다. 가뭄은 그들에게는 목숨을 담보하는 문제이고 정말 죽는 거 외에는 답이 없는 국가적 위기, 그게 바로 가뭄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심각한 가뭄이 찾아옴으로서 생명줄이 끊어지는 위기 가운데 놓였습니다.
그들에게 임하는 가뭄이 얼마나 심각하고 그들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구체적으로 증언합니다. 사람으로부터 해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가뭄의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물,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며 빈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러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머리를 가렸다는 것은 극도의 수치와 그리고 풀어낼 수 없는 절망감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인간들만 고통 당하는 게 아니라 동물들도 그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 당합니다. 풀이 하나도 없고 물이 하나도 없으니까 오죽하면 동물들이 낳은 새끼를 내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어디에도 땅에도 하늘에도 물이 하나도 없는 가뭄 가운데 온 백성과 심지어 동물들도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가뭄이라는 것은 물이 없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영적 가뭄도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은 마실 물 조차 메마른 극심한 가뭄이지만 하나님이 그 극심한 감음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뜻은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의 영적 가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가뭄, 은혜가 완전히 바짝바짝 메말라 다 사라진 가뭄, 그래서 백성들의 심령이 쫙쫙 갈라지고 메말라 있는 빈그릇이라는 겁니다. 극심한 가뭄을 바라보며 말씀과 은혜 없이 가물어 메마른 땅이 되어 버린 심령의 가뭄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남 유다 백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가뭄, 심판으로 임하는 경고의 가뭄입니다. 그 가뭄으로 인해 온 백성들이 슬퍼하며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애통하고 부르짖는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회개나 기도로서의 애통과 부르짖음이 아니라 그저 가뭄이 너무 힘들다…라는 하소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 국가적인 극심한 고통과 가뭄을 직면할 때 백성들은 기도하지도 않는데, 예레미야가 중보자의 탄원 기도를 간절히 주님께 드립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지도 기도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온 백성들을 대표하며 중보자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두 가지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데, 첫 번째는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 대하여 증언할지라도...입니다. 사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범죄하지 않았고 남 유다 전체의 공동체 죄악에 공헌한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남 유다 백성들의 공동체 죄악은 나와 무관한 너희들의 죄악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너희들의 죄악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의 죄악임을 고백하는 게 예레미야가 가졌던 중보자로서의 자세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잘못 안 했고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문제와 나의 죄악으로 품고 주 앞에 나아가는 태도가 이 시대를 살리며 기도하는 중보자의 자세라는 겁니다. 우리도 주변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이런 자세가 너무 중요합니다. 저 사람을 고쳐 주시고 저 사람의 문제 해결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아닌 그 사람과 함께 저를 고쳐 주시고, 저 사람의 문제와 함께 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끌어 앉는 중보자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때, 이 세상 너무 타락했다…세상은 망할 곳이야 그러면서 기도하면서도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뒤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대한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도, 이 교회가 문제다… 저 교회가 문제다…마치 남의 교회 같이 이야기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쑥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교회 문제는 목사님 문제고 장로님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야 그러고 쑥 빠집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중보자로서 뭐라고 선언합니까? 이 세상의 문제도 우리 문제, 교회의 문제도 우리 문제…중보 기도한다는 것은 그것을 나와 무관한 사건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우리의 아픔으로 우리의 죄악으로 우리의 죄로 품고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냥 저들 만의 문제가 아니고 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이며 우리의 문제입니다…라는 고백이 중보자의 기도의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 예레미야의 기도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입니다. 공동체와 나라의 죄를 우리의 죄로 품고 예레미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고 우리 죄의 민낯을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를 구해줄 가치나 용서해 줄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우리를 위해서 일하지 마시고 주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정체성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본질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고난 당할 때에 구원자이신, 그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응답하시고 일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겁니다. 그 변함없으시며 언제나 한결 같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을 위하여 일하여 달라 간구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 응답을 구할 때 무엇을 의지해야 되냐 하면 내 상황과 환경의 절박함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해 일하심을 믿음으로 붙들고 우리가 구하는 겁니다. 그 거룩하신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거예요. 주님 나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나의 부족함 주님이 다 아시지요. 그런데 주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머리 숙여 고백합니다. 변치 않는 그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이 시간 일하여 주옵소서…이 고백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될 기도라는 겁니다. 불신앙이라는 것은 하루 종일 상황과 환경만 묵상하고 종일 자기 생각만 하는 겁니다. 영적으로 병들면 병들수록 하나님이 아닌 내 생각만 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자기 부인이란 내 생각을 넘어 하나님 생각하는 거며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소망이 필요한 겁니다. 지금 극심한 가뭄 가운데 남 유다에는 소망이 다 사라진 칠흑 같은 어둠입니다. 그때 필요한 게 하나님의 임재이고, 하늘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본질인 구원자를 바라보는 겁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주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는 그 기도의 삶 가운데 소망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의 자리에서 그의 구원자 되심을, 소망되심을 믿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가뭄이 가득한 삶 가운데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며, 길을 열어 주시고 소망을 주심을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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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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