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은 하나님이 사명으로 주신 적군, 그 싸워 이겨야 될 적인 블레셋 여인과 자기 눈에 올가미가 씌워져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사명과 전혀 맞지 않는 그 여인을 향해 직진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조언하고 막아섰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과 지금 결혼식을 하는 중이죠. 그 결혼 잔치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 삼손이 재미로 지금 수수께끼를 냈는데 그 수수께끼를 푸는 거에 목숨을 거는 블레셋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옷 30 벌을 손해보지 않기 위해 그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그 신부측 가족을 협박하는 거죠. 수수께끼 답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너희 집 모두 불질러 버리겠다고….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전형적인 세상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삼손의 아내 될 블레셋 여인이 결혼 잔치 7일 내내 그 수수께끼 정답을 알기 위해 삼손에게 애걸복걸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하다며 울면서 사정하는 겁니다. 결혼 잔치 일주일 내내 아내가 수수께기 정답 알려 달라고 저러고 있으니 얼마나 어의 없습니까? 이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한 여인의 모습만 보면 안되고 이 세상을 봐야 합니다. 블레셋으로 대표된 이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길들이려 하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삼손은 하나님께 길들임을 받아야 되는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하게 구별된 나실인인 삼손이, 하나님에게 온전히 결박되어 하나님에게 길들여지는 대신, 블레셋 여인에 의해 세상에 길들여지며 세상의 가치관에 끌려 다니며 자꾸 세상을 향해 지금 나아가는 겁니다.결국 삼손이 두손 들었습니다. 삼손이 버티질 못하고 결국 답을 알려주는 것이죠. 세상이 여러분들을 길들이는 방법이 이렇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완전히 거절하지 아니하면 이런 식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울면서 사정하고 매달리는 모습, 삼손을 끌어 당기는 그 모습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삼손을 길들이고 있는지를 보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정답을 가져오니 삼손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결혼하려는 이 여인이 결국 자기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블레셋 사람들의 편에서 섰다는 것도 화가 나는 것이고, 그런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수께끼 정답을 가져온 것도 화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홧김에 삼손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수수께끼 경품인 옷 30벌을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고 뺏어오는 것입니다. 옷 30 벌은 집 한 채도 아니고, 그냥 결혼식 잔치에서 재미로 걸 수 있는 경품들 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목숨 걸고 협박한 블레셋 사람들도 어의가 없고, 그것에 화가 나서 홧김에 30명을 쳐죽이고 옷 30벌을 가져온 삼손도 어의가 없는 겁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거는 가치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겁니다. 이 사건이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죽인 첫 번째 싸움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 오거나 하나님의 사명이 완성 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홧김에 한 분노 폭발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는 홧김에 결혼 잔치 중간에 집으로 돌아와 버립니다. 씩씩 거리고, 결혼식 깽판 치고 지금 아내를 처가에 놔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버린 것입니다. 이 두가지 다 분노가 이끈 즉흥적 결정이자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삼손의 모습이 영적 문제라는 것을 성경은 선명하기 증언하며 경고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가 이끄는 즉흥적 결정에 끌려 다니는 이 모습이 바로 삼손의 영적 현주소이며, 세상에 길들여져 있는 삼손의 영적 미숙함이었습니다. 야생마 같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데로 자기가 마음대로 판단하는 영적인 하향 곡선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명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삼손, 철저히 세상에 물들고 세상에 길들여진 삼손을 보게 되는 거예요. 분노가 그 사람을 일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거예요. 분노를 터뜨리며 홧김에 즉흥적으로 잘못된 결정하는 것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 말하는데 나를 움직이고 이끄는 힘이 여전히 분노의 힘이라면, 즉흥적으로 분노가 잘못된 결정을 하는데 끌려간다면 이건 영적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가 나를 이끌어 즉흥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하게 하는데 큰 대가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삼손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 신중한 결정이 나를 이끌기를, 나의 삶이 분노가 아닌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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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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