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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는 포로로 잡혀와 어둠과 소망을 다 잃은 절망 가운데 있는 에스겔에게 하늘을 여시고 찾아오신 오신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합니다. 그발 강가에서 대운하 공사에 투입되는 노예로 끌려와 5년동안 사람 이하의 삶을 살아가며 어둠과 절망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에스겔에게, 우리 나라는 하나님이 버리셨다는 그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았음을 내가 여전히 너와 함께함을 선명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을 여시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여전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 위에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놀라운 환상입니다. 이 환상에서 오늘 말씀은 네 생물의 형상이 보여지는 놀라운 환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열고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와 주의 영을 충만하게 보여 주시며 에스겔에게 하늘의 현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하늘의 현실에서 보여지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람의 형상을 닮은 네 생물의 형상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무엇처럼 보인다…무엇 같이 보인다고 증언하는데 놀라운 하늘의 현실을 인간의 언어로 담는다는 게 얼마나 한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리고 전체적인 에스겔의 환상과 비전을 보면서 하늘의 현실을 다 담을 수 없는 인간 언어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말씀을 마음에 담는 게 중요합니다.
하늘의 현실속에 보여주신 이 네 생물의 형상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전에, 먼저 에스겔 1장에 등장하는 네 생몰의 형상은 주일 예배 시간에 배우고 있는 계시록 4장 말씀과 다 연결되는 큰 그림이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의 놀라운 환상을 받은 삶의 자리는 바로 밧모섬에 끌려간 유배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며 전하는 것 때문에 잡혀서 유배를 당해 깊은 어둠과 소망이 없어 보이는 절망 가운데 그 밧모섬에 잡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도 극심한 핍박과 박해, 그 안에 이단과 사이비의 미혹들로 꺼져가는 등불과 같이 주님의 몸된 교회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탄식 속에 인내로 버티고 있는 그 삶의 현장에 하늘을 여시고 놀랍게 사도 요한에게 놀라운 하늘의 현실을 보여주시는 게 바로 계시록 말씀입니다. 계시록 4장에 사도 요한에게 하늘의 현실을 보여주시며 놀라운 하나님의 보좌와 그 하늘 보좌를 둘러싸는 네 생물의 형상이 등장하는데, 구약의 말씀 배경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계시록 4장의 환상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놀라운 하늘의 현실의 환상을 지금 사도 요한에게도 보여주고 계시는구나… 라는 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에스겔 1장에서 주신 이 환상에 대한 전 이해가 없으면, 계시록 4장이 뜬 구름 잡듯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현실 가운데 있는 네 생물의 형상들이 무엇입니까? 네 생물의 형상들이 누구냐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하늘의 보좌를 둘러싸고 하나님을 밤낮으로 찬양하고 있는 천사들, 천상의 존재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네 생물들의 형상을 이사야서 6장에는 스랍이라 부르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그룹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네 생물들의 형상이 불 가운데, 빛 가운데 나타나는데 그 모습은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날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증언합니다. 네 얼굴들이 있는데 앞에서 볼 때는 사람의 얼굴이고 오른쪽에서 볼 때는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에서 볼 때는 소의 얼굴이고 뒤에서 볼 때는 독수리의 얼굴이라는 겁니다.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은 지혜를 대표하는 모습이고 소의 모습은 성실함의 모습이죠. 사자의 모습은 용맹의 모습이고 독수리는 민첩과 하늘을 날아가는 하늘의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네 모습이 동일하게 계시록 4장에도 증언되는데 네 형상의 놀라운 천사들의 하늘보좌를 둘러싸는 그 임재가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과 똑같은 비전을 보여 주시는구나…하늘의 현실은 언제 어디서나 바뀐 게 없구나…라는 것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네 가지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 사복음서에서 각기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복음서에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바로 이 네 가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마가복음은 인자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누가복음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은 하늘에서 예수 하나님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 복음서는 다 연결되어 예수님의 다른 모습들을 각각 강조하여 보여 주는데 그게 마치 이 네 형상의 천사 모습과 맡다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자복음이라 부르고, 마가복음을 인자,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람복음이라 부릅니다. 누가복음을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소의 복음이라 부르고, 요한복음은 예수 하나님만을 보여주는 하늘의 현실을 강조하는 독수리 복음이라고 알려 있는 것이죠.이 모든 것들, 이 놀라운 영적인 의미를 그 당시 에스겔 선지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 환상이 무엇이여 어떤 의미인지를 다 모른 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보여주신 환상을 그대로 우리에게 말씀으로 증언하는데 나중에 때가 차며 이게 장차 오실 메시아, 하늘의 현실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실 독생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시는 놀라운 지혜와 신비들이 다 숨어 있었음이 신비 가운데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네 가지의 형상의 모습으로 하늘의 현실을 보여주는 그 놀라운 임재, 하늘에서 천사와 함께 천군 천사 모두 주께 경배하는 그 모습을, 우리는 감격하며 우리의 찬양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에스겔의 비전과 환상을 오늘 현재형으로 담기를 주께서는 원하십니다. 이 새벽에 하루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며 내가 깨어 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땅의 어둠과 절망의 현실 속에 오늘 이 시간 하늘을 여시고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주를 사모하며 주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에스겔과 같이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기 원합니다. 그발 강가의 삶의 자리와 처한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에스겔과 같이 내가 보니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임재가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네 생물의 형상인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와 함께 주를 찬양하고 계시는구나…. 사람의 모습, 사자의 모습, 소의 모습, 독수리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그 예수님의 속성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 보여 주셨구나….이 놀라운 하늘의 현실 앞에 감격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는 땅의 현실을 살아가고 땅의 현실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들인데, 우리의 어두운 눈을 열어 주셔서 우리는 땅의 현실만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이구나…깨닫게 해주시는 겁니다. 믿음으로 인내로 버티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의 임재가 하늘의 현실로 임하고 계심을 바라보는 존재들임을 깨닫게 해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고 실체로 바라보는 자들의 삶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놀라운 환상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사모하며, 땅의 현실을 넘어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찬양하고 있음을 하늘의 현실로 바라보며 붙들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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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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