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이란 말의 정의는 경계가 다다른 지점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액체에서 기체로 형 질과 모양이 변화를 일으키는 시점이 바로 임계점 입니다. 임계점에 다다른 물은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들리지 않았던 물 끓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참고 참다가 바로 형질과 모양이 변화를 일으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임계점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왕의 마음에 그동안 꾹 눌러 놓았던, 담았던 생각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왕의 마음속에 있었던 불신앙이 임계점이 되고 나니까 hot button을 누르게 되고 감정이 실린 행동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임계점을 넘어 가면서 마음속에 꾹꾹 눌러도 불순종의 생각이 터지면서 감정이 실린 불순종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위급한 때입니다.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거 같은 블레셋이 쳐들어오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런데 이 위급한 상황에 사무엘이 7일을 기다렸는데도 오질 않는 것입니다.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데 사무엘이 안 와서 시작도 못하고 백성들은 막 흘어 지려고 하는게 보입니다. 그때 사울왕의 마음속에 터져 나오는 생각은 아마 이랬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 전멸이 구나…모두 망하는 구나….더 중요한 생각은 “사무엘이 왜 이렇게 안 오는거야?” 모든 화살을 사무엘에게 돌리고 있는 생각이 막 올라오면서 뇌관을 건드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금 마음속에 쌓여 있었던 불신앙을 터트리게 되는 임계점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불신앙을 터뜨리는 임계점에서 사울왕이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번제를 스스로 인도해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사울 왕이 “번제 와 화목제를 이리로 가져오라.” 명령할 때 그 말을 한 번 상상해 보시면 그 말에는 사울의 쌓아 두었던 감정이 실리는 말들이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의 대한 원망,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감정에 다 섞인 말과 행동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상황과 환경과 사람들에게 집중했던 사울의 진짜 속마음이 눈에 보이는 불순종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시점이 돼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무엘 대신 스스로 번제를 드립니다. 임계점을 넘어 터지게 된 사울왕의 불순종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을 무시한 불순종입니다. 제사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게 하나님의 기준인데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 때문에 이 원칙과 기준을 무너뜨리며 월권을 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을 이끄는 자기 변명의 논리는 뭐냐 하면 지금 내 코가 석자 인데 예배와 제사 하나하나 어떻게 다 따지냐는 겁니다. 모든 상황이 모든 것을 잘못된 원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과 지상주의 입니다. 예배의 기준과 원칙 보다는 내가 처한 전쟁이 훨씬 더 중요하고, 내가 처한 상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예배와 제사 대신 내 문제와 상황이 항상 압도하고 크게 보이며, 그 상황과 환경을 통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과 방법을 신뢰하지 않는 사울왕의 불순종 이었음을 성경은 지적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불순종입니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믿음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무엘이 왜 7일 동안 기다리라고 사울에게 명령을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때와 타이밍을 신뢰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고, 왕은 백성들을 대표하기에 위기 가운데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이 먼저 보이는 것을 삶으로 훈련하고 체득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특별히 이 블레셋과의 전쟁은 영적 전쟁이었기 때문에, 영적 전쟁의 승패는 눈에 보이는 군사력이나 사람 수나 돈의 힘을 통해서 갈리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을 철저히 믿었어야 했습니다. 사울왕은 백성을 대표하여 위기 상황에서 그 영적 원리를 붙들고 전쟁에 나아가며 주님을 먼저 바라보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훈련되어 있어야 하는 자로 세움 받은 겁니다. 그래서 온전한 기다림을 요구하며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기다리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온전히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적군을 바라보고 흩어지는 백성을 바라보면서 그가 임계점에 도달하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자신이 스스로 때를 정해버렸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울왕은 사무엘을 분명히 7일 이나 기다렸습니다. 95% 기다린 것인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5%를 기다리지 못한 겁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95% 기다렸는데, 5%를 못 기다려서 자기 스스로 플랜 b 를 만든 것과 똑같습니다. 끝까지 못 기다린 아브라함은 결국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끝까지 못 기다린 것은 못 기다린 것이라는 겁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사울왕은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플랜 B를 만들어 스스로 번제를 드리게 되고, 결국 자기가 만든 플랜 b 때문에 아브라함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울왕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못 기다려서 결국 못 기다린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 보며 거울과 같이 비춰 보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차곡 차곡 쌓아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압력을 받게되면 임계점에 도달해 그것이 나에게 감정이 실린 불신앙의 행동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사울 왕과 같이 그렇게 감정이 실린 불신앙의 행동으로 나아가기 까지 내 삶을 방치하지 않는 게 지혜입니다. 사울왕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제든지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감정이 실린 불신앙의 행동으로 불쑥불쑥 나올 수 있음을 잊지 말고 늘 깨어 조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어려움과 위기 가운데 동일하게 실수하고 자빠지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원칙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에 새겨야 되는 영적 진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늘 조심하며 처음부터 믿음을 붙들며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르짖으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 이 약속을 지키는 은혜를 부어 주시 옵소서.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 를 허락하여 주시 옵소서. 임계점을 넘어 불신앙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주님 우리를 지켜 주시 옵소서. 그 기도가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담은 기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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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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