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마치 장례식에서 슬픔을 담은 애곡 하는 탄식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현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니까 마치 장례식에 와 있는 것처럼 탄식이 나오고 눈물이 터져 나올 듯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상황은 어떻습니까?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라는 하나님의 자녀됨에 자의식을 다 잃어버린 채, 하나님만 붙들지 않고 세상을 겸하여 눈에 보이는 강대국의 군사력과 돈의 힘을 붙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마치 남편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그런 창녀와 같은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과격하게 표현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황이 이만큼 심각하고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입니다. 그들의 정결함과 순수함이란 유일한 남편 되신 하나님만을 나의 도움으로 삼으며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 순수함과 정결함을 잃어버린 채 영적 정결함을 잃어버린 채 마치 창녀처럼 하나님 남편과 세상 남편을 겸하여 붙들고 다른 남자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 되심을 거절하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마치 기댈 다른 남편을 찾듯 다른 나라들에게 기웃거리며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고 살아가려고 하고 있는 영적 현실에 이사야 선지자는 탄식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세상 풍조를 따라가며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붙들다가 망하기 일보 직전인 그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며 이사야 선지자는 통곡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시대를 깨우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가 하는 일은 무뎌지고 잠자고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일깨우고 기억나게 만드는 겁니다. 인간이 존재하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가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거룩한 책무였습니다. 또 하나 선지자들의 책무는 이 시대를 하나님의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을 갖도록 이끄는 겁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하늘의 시각으로 하나님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눈에 보이는 왕보다 더 분명한 실체이신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눈에 보이는 물질 가치와 군사력보다 더 분명한 실체인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를 바라보는 삶으로 끊임없이 이끄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입니다. 말씀으로 나를 채우고 끊임없이 나를 일깨우고 나를 기억나게 하지 않으면 조금만 지나면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조금만 지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 머리가 나빠서 잊어버리고 망각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천성적으로 죄악을 좋아하는 반역의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면서 동시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찾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반복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망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도움으로 삼으려고 쫓아가기 때문에 결국 너희들은 어려움에 처하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이것이 이사야의 반복적인 경고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참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좀 더 정확하게 증언 합니다. 창녀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불순물이 가득한 순금, 물을 탄 원액 포도주와 같다는 겁니다. 순금이라고 자랑하는데 사실 불순물이 가득 섞인 금이 되어 가치가 확 떨어지게 된 겁니다. 100%원액 포도주라고 자랑했는데, 알고 보니 순수한 포도주에 물타기를 시도한 포도주가 되어 가치가 확 떨어지게 된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설렁탕이 100% 뼈로 우려낸 설렁탕이라고 홍보하는데, 알고 보니 물을 많이 탄 설렁탕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잠시 이득은 얻을지 모르나 결국 본연의 포도주와 본연의 설렁탕의 맛은 나지 않는 것이고 손님들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불순물이 잔뜩 낀 보석과 같은 상태, 물타기를 시도한 포도주 같은 영적 상태라고 경고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현주소는 불순물이 가득한 보석, 물타기를 한 포도주나 설렁탕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물타기 한 그 맛이 곧 들통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과 순수함이 다 사라져 버린 이스라엘도 곧 들통 난다고 경고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의 거룩함과 순수함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불순물을 섞지 않는 것이고 물을 섞지 않는 겁니다. 신앙의 본질을 지킨다는 것은 가만 있으면 거기에 자꾸 불순물이 끼고 자꾸 물타기를 시도하려는 변질이 찾아온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경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물타기를 시도하고 불순물 섞기를 시도하면 하나님 대신 상수리 나무를 붙들려 한다고 경고합니다. 오늘 말씀에 두 번이나 강조되는 건 상수리 나무입니다. 상수리나무가 뭐냐 하면 신앙 생활하는데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되시는 것을 거절하게 만드는 하나님 보다 위에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수단화하고 도구화 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내가 더 큰 도움이라고 여기는 상수리 나무를 붙드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수리 나무는 강대국들의 군사력이 있고 눈에 보이는 물질과 돈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수리 나무들을 붙들기 위해 하나님은 그것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끔찍한 몰렉의 제사는 내가 원하는 상수리 나무를 위해서 자식도 불을 지나가게 하면서까지 얻으려는 극단적 악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신앙에 불순물을 섞고, 물타기를 시도해서 하나님 대신 상수리 나무를 붙들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나가는 창녀와 같은 신앙으로 타락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끊임없이 경고했던 말씀이 뭡니까? 순전한 복음 순수한 복음에 자꾸 불순물을 넣으려 하고, 물타기를 시도하는 다른 복음과 유사복음을 경고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고 거기에 할례라는 율법이라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물타기,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십자가 복음 하나로 충분하지 않고, 십자가 복음의 도움만으로만 구원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거기에 불순물을 섞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게 되면 진짜 복음에 불순물이 섞이게 되고, 진짜 복음에 물타기를 하면서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가장 완벽한 신앙 공동체라고 여겼던 초대교회도 구약의 수많은 공동체들이 문제로 이 문제로 이렇게 씨름하고 싸웠으며, 하나님께 이 정도로 심각한 경고와 책망과 심판을 받았다면 우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겁니다. 이 시대에도 본질적으로 우리가 싸워야 되는 건 순전한 십자가 복음에 불순물과 물타기를 끊임 없이 시도하는 혼합주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건 아닌데 하나님만이 나에 도움되시는 걸 거절하는 혼합주의의 위험을 직시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겨서 순전한 복음에 물타기를 시도하고, 불순물 섞는 혼합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단호한 선언이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너희들의 영적 현실을 바라보니 내가 장례식에 온 것처럼 너무 슬프다는 주님의 마음을 담기 원합니다. 그래서 내 손을 돌려 찌꺼기를 다 물로 씻어내듯 정결하게 할 것이며, 물타기한 것들을 다 버리고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이 찾아오는 겁니다. 너희가 돌아오지 아니하면, 그렇게 불순물이 가득 낀 신앙, 물타기를 시도한 신앙에서 다 불순물을 녹여버리고 그 물을 다 빼내어 본래대로 회복하게 될 거라는 주님의 외침을 마음에 담으십시오. 너희는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돌아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라는 외침, 그게 바로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영적 시각이 열리기 원합니다. 불순물을 섞고 물타기를 시도하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며 슬프다 애곡하시는 하나님의 통곡소리, 너희가 창녀가 되었다고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소리를 듣는 귀가 열리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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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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