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가 모압에서 이민 생활을 다 청산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0년간의 이민 생활을 다 접고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아무 것도 없이 두 과부가 돌아오는 그 모습은 쓸쓸한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리고 이방인 룻에게는 그 돌아오는 길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어떻게 보면 첫 이민을 가는 듯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과 쓸쓸한 마음을 나오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직면한 것은 따가운 시선과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온 성읍이 남편 잃고 아들 다 잃고 며느리와 쓸쓸히 돌아오는 그 두 여인을 바라보며 지금 온 지역 성읍이 수군대며 떠들고 있는 겁니다. 그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온 동네 다 돌았고, 온 백성들이 수군 대며 다 한 마디씩 하고 있는 상황이 상상 되시죠. 그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싫었으며 그들의 뒷말이 얼마나 짜증 났을까….상상해봅니다. 안 그래도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빈털터리로 이민 생활을 접고 돌아오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절망 스러운데, 그들을 향한 따가운 시선과 그들을 향하여 떠들며 말하는 그 가십 거리 된 모습이 얼마나 그들을 더 힘들게 했을까? 그 수많은 사람들의 그 따가운 시선, 그 수군수군거리는 그 말들이 너무 짜증 나는 것이지요.
안 그래도 지금 힘들고 어려워 온 몸과 마음이 상처받은 그들을 바라보며, 입소문 내고 싶어 근질 거리는 입,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눈과 수군대는 말들을 하기 좋아하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가만히 기도하는 대신 입술을 열어 전달하기에 열을 내고 쳐다보면서 수군수군 대는 것이 영적 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서 우리 모두는 이 미국땅에 뿌리 내린 이민자들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이 척박한 땅에 외국인과 주변인으로 사는 아픔과 어려움을 다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에 더 민감하게 영적으로 반응하기 원합니다. 어려움과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입술로 수군대며 범죄 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로 멈추게 도와 달라 기도하기 원합니다. 따가운 시선을 거두고 불쌍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소문 내고 싶어 근질 거리는 입을 중보 기도하는 데만 사용하는 도구로, 영적으로 실천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그렇게 따가운 시선과 그런 뒷말이 무성한 그 사람들을 향하여 나오미가 반응합니다. 나를 이제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는 것입니다. 나오미란 이름 자체가 “기쁨”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마라”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쓴 물”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을 찾다가 물을 먹었는데 그 물이 쓰다... 그래서 마라가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는 지금 나의 인생을 이제는 나오미, 기쁨이라 부르지 말고 나를 쓴 물, 마라라 부르라고 탄식하듯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기쁨의 인생이 아니라 지금 쓴 물이 막 올라오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 남편의 이름 엘리멜렉,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시다...는 고백대로 살지 못하고 인생을 내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살다가 결국 어려움을 당하고 기쁨을 다 잃어버린 채 쓴 물이 올라오는 인생, 마라로 살게 되었다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수군대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싸우는 대신 나오미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거예요. 이 나오미의 탄식이 우리 인생의 탄식으로 마음에 다가 옵니다. 저와 여러분들 인생에 아마 이런 쓴 물이 올라오는 자리가 있었을 겁니다. 우리도 이 코로나 광야 가운데 2년이 넘어가면서 되는 일 하나 없고 다 무너지며 모든 것이 깨져서 쓴 물이 올라오는 마라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과거로 경험했던 분도 계시고 그것을 지금 현재형으로 경험하시는 분도 계시고, 미래의 경험하게 될 분도 계십니다. 내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가다 내려 가다 못해 그 내 인생의 밑바닥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자리, 그게 지금 나오미가 있는 그 절박한 아무런 소망도 없는 상황이자 저와 여러분들의 탄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탄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이 되어 메아리치고 있음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나오미는 하나님을 붙들고 “주님 나를 외면하지 마시고 나를 붙드셔서 마라에서 엘림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겁니다. 되는 일 없이 다 무너지고 인생이 다 깨지고 무너진 마라와 같은 쓴 물의 인생에서 주님 나를 외면하지 마시고, 마라에서 엘림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 나아가 탄식하며 동시에 하나님께 매달리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매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끝에 보면 나오미의 눈물나는 탄식과 고백 뒤에 어떻게 보면 영화의 복선 같은 이야기로 마무리 짓게 됩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였다…라는 것으로 1장이 마무리 되며 그 깊은 인생의 깊은 밑바닥에서 한 줄기의 희망을 복선과 같이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오미와 룻이 이해 관계와 손익 관계를 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선택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지고 쓴 물이 올라오는 마라 같은 인생길을 걷고 있는데,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하늘의 은혜로 건져 주시고 엘림으로 인도하실 것을 보여주는 작은 희망의 구름, 그 반전의 드라마가 룻기 2 장을 통하여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지금 마라의 현장입니다. 우리 인생이 나오미와 같이 기쁨을 잃어버리고 쓴 물만 올라오는 마라의 현장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 상대하지 말고, 사람들 붙들고 싸우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붙드는 저와 여러분 되기 원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깨지고 되는 것 하나 없는 인생, 내 마음에서 내 발 밑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삶 가운데 나오미와 같은 믿음의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내 기쁨과 감사함을 다 잃어버리고 인생의 쓴 물만 올라오는 마라의 자리에서 탄식하는 그 자리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쓴 물인 마라에서 단물인 엘림으로 인도 하셨듯이 나의 쓴 물의 인생을 단 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주님만 바라보고 붙드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손에 건 짐을 받고 인도함을 받아 나의 인생이 쓴 물 마라에서, 단물 엘림으로 인도함 받는 소망을 붙들고 주님 만을 바라보고 주님 만을 붙들고 오늘 하루 인생 힘 있게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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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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