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해서 골로새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한 기독론의 고백과 선언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만을 분명히 믿는 신앙을 강조하며 흔들림 없이 그 분만을 믿고 고백하기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 즉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천국으로 옮겨 가신 그 놀라운 사건과 죄사함의 속량 사건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 하시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창조자로 이 세상에 만물과 함께 존재하시는 하나님 그 아들 되심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예수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게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교회의 신비 속에서 발견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심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로서 교회의 머리 되신 분입니다. 교회가 몸이고 그리스도는 그 몸에 머리 시라는 것이죠.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는데, 중요한 특징은 기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계라면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잘라 가지고 새 part를 사서 그냥 붙이면 되고, 손가락이 아프면 손가락 잘라서 새 손가락 붙이면 되는 것이죠. 그것을 하지 못하는 건 뭐냐면 바로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계는 다리가 아프다고 온 몸이 아플 필요가 없죠. 그런데 몸이라는 건 다리가 아프면 온 몸이 그 아픔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손가락이 아파도 손가락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이 다 아픈 겁니다. 그래서 몸이라는 특징은 radical connectedness…모두가 함께 하는 겁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하는 그 끈끈한 연결 점이 있는 게 몸이란 특징이죠. 한 지체와 한 부분이 아플 때 모든 몸이 함께 아프고 한 부분이 기뻐할 때 모두 기뻐하는 것이 바로 몸으로써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교회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기계가 아니라 교회가 건물과 조직이 아니라 교회가 몸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몸으로서의 교회를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교회가 바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안에 몸으로서 존재한다는 유기적인 신비를 붙들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세상의 논리가 들어와 마치 기계나 조직과 같이 주도하게 되지 않도록 몸으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그 갱신하고 회복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또 하나 교회는 그냥 몸이 아니라 머리가 그리스도 되신 몸, 그리스도를 머리에 둔 몸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머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중심, 각자의 모든 파트와 지체가 누구의 명령과 방향성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향성과 지배를 따라 가는 것이죠. 다리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게 아니라 머리가 명령하는 곳을 다리가 가는 게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손이 하고 싶은 거를 잡는 게 아니라 머리가 명령한 것을 손가락이 잡는 것이죠.입이 원하는 걸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머리가 얘기하고 방향을 준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 몸의 방향성과 생각 하는 것, 나아갈 길 모두 누구의 지배와 통치 아래 있는 것인가 하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교회, 주님의 인도하심과 다스리심에 따라 움직이고 멈추는 교회가 되는 겁니다. 교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을 망각하고 놓쳐 버리게 되면 머리와 상관없이 손발이 움직이고, 입이 말을 하면서 몸이 말을 안 듣는 아픈 몸,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조직이 교회가 아니라,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분의 지배와 다스림 아래 있기에 교회가 존재함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생의 문제는 내가 머리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머리 쓰는 싸움이 아니라 머리 써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머리 되신 예수님을 붙들 때 해결되고 승리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머리 쓰는 싸움이 아니라 머리 붙드는 싸움입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드는 싸움이지 내 머리를 쓰는 것을 내려놓는 싸움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몸으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온전히 붙들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바로 모든 충만으로 거하게 되시는 겁니다. 교회가 주님을 중심으로 머리로 그분만을 붙들고 그분의 다스림과 인도 아래 살아갈 때 우리에게 경험 되는 게 뭡니까?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성도인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내 삶의 초점이 과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갈 때 우리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복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충만으로 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머리로 붙들고 예수님의 머리 되심을 고백하며 우리가 살아갈 때 충만함과 함께 부어 주시는 게 바로 화평입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하고 관계가 깨져 불화 하죠. 화목이 아니라 불화…관계가 깨져서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충만한 가운데 거하게 되며 십자가의 사랑에 은혜로 덮여 막힌 담이 헐어 지며 십자가의 피로 깨진 관계가 화평의 관계로 회복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과의 깨진 관계가 죄로 말미암아 끊어졌던 불화가 회복되어 화평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화목하게 되심을 기뻐하신다 그랬어요.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오며 주님 앞에 회복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붙들고 화목을 누리는 그 십자가 사랑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는 거죠. 그게 바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가장 놀라운 신비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몸으로서 맛보아 알도록 몸된 교회를 세우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에 두고 모시는 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 본질을 늘 깨닫고 보이는 것에 방점을 두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방점을 두고 살아가는 자가 되도록 끊임 없이 주님 앞에 조율 받아야 합니다. 내 삶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내 삶의 초점과 무게 중심을 예수님께 두어야 되고 머리이신 예수 님의 통제를 받고 예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 갈 때 우리 가운데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그 신비가 주님이 주시는 화평이 부어지는 은혜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예수님 머리 되심을 붙들고 그분 안에 우리는 변화 받고 건짐을 받아, 주님이 주시는 그 충만함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신앙 생활의 진수이며 예수님을 붙드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값 주고 사신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저와 여러분들이 지체됨을 잊지 마시고 우리가 몸으로서 하나 되어 연결되어 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주님의 지시와 방향성, 다스리심만 따라가는 생명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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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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