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을 통하여 다윗이 크게 무너지기 전에 그에게 있었던 영적 전조 증상이 있었음을 배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전조증상을 무시하고 다윗은 죄가 열매를 맺도록 방치하였고 결국 밧세바라는 여인을 궁으로 데려와서 동침하게 되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딱 한 번 실수했고 딱 한 번 잘못했는데 그 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애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딱 한번 실수 했는데 아이가 생길 수 있습니까? 딱 한번 내가 잘못했는데, 딱 한번 내가 일탈했는데, 딱 한번 내가 혈기를 부렸는데 어떻게 일이 그렇게 커질 수 있습니까? 인생이 그렇다는 겁니다. 딱 한 번에 그 실수와 딱 한 번의 죄가 걷잡을 수 없이 일을 크게 만든 것입니다. 만약 밧세바가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다윗이 하나님이 경고로 생각하고 그 죄진 자리 무너지고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봤으면 그는 살아날 수도 있었습니다. 주님 저 잘못했습니다…저는 죄인입니다…고백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으면 일이 이 정도로 커지고 그렇게 나라 전체가 고통받는 그런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비극은 물론 밧세바와 동침하며 큰 죄를 짓는 것에 있습니다만 동시에 그 죄를 짓고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는 대신 그 죄를 가리기 위해 두번째, 세번째 죄를 계속 짓는 패턴에 빠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었을 때 주여 절 죽여 주시옵소서… 고백하며 그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봤으면 일이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회개대신 하나님 낯을 피하고 숨고 가리고 핑계와 자기 합리화로 무너지는 것, 그게 바로 죄의 속성이라는 겁니다. 죄의 속성은 한번 죄 짓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죄를 가리기 위해 또 죄를 짓는 패턴에 빠져 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그 자리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마치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하며 자기 합리화를 위해 계속해서 죄의 사이클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 위대한 다윗 왕이 큰 죄를 짓고 나서 한 무너짐의 패턴이었습니다.
다윗왕이 죄를 가리고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용한 방법은 뭐냐면 공권력/왕권 남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주신 왕권은 자기가 잘나서 올라간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명을 위해 잠기 맡겨 주신 자리,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잘 섬기라고 위임된 권한이자 자리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이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위임된 권한과 자리를 계속 해서 죄를 짓고 죄를 덮기 위해 사용하는, 소위 말하는 공권력 남용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공권력과 왕권을 남용하며 그가 가져온 계획은 아주 얄팍한 계획, 악인의 꾀였습니다. 전쟁 중에 있는 우리아를 집으로 호출하여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어명을 내리는 겁니다. 겉으로는 우리아를 호출해서 전쟁 상황을 보고받고 물어보는 척, 백성들과 군인들을 위하는 척 합니다. 우리아를 집으로 돌아가 쉬게 하라고 어명을 내리면서 우리아를 위하는 척 합니다. 왜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집으로 불렀습니까? 왜 우리야를 집에 가서 아내와 함께 쉬라고 어명을 내렸습니까? 다 새빨간 거짓말들입니다. 전쟁의 상황이 궁금해서도 아니었고, 전쟁에서 우리 군사들이 잘 싸우는 걸 정말 알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아가 전쟁에서 너무 고생했으니까 집에 가서 재충전해서 다시 가서 열심히 잘 싸우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이건 다 그럴듯한 포장이고 실제 다윗의 본심은 우리아를 집으로 돌려보내서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만들어서 자기를 통해 생긴 씨앗을 우리아 때문에 생긴 아이처럼 덮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자기의 죄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데 본심은 결국 자신이 지은 죄를 덮기 위한 악한 자의 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사람이 복음서에 등장하는데 바로 가롯유다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한 여인이 아주 값비싼 향유를 붓고 있는데, 겉으로 봐서는 의로움에 불탄 한 사람 가룟 유다가 막 화를 냅니다. 이 비싼 돈 왜 이렇게 허비하고 낭비하냐고…이 정도 돈이면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막 몰아세웠습니다.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었지만 가롯유다의 본심은 헌금을 훔치는 도둑이었습니다. 악인의 꾀에 빠지면 우리가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논리를 가지고 오고, 겉으로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는데 진짜 본심은 나의 죄를 가리기 위한 나의 합리화와 변명, 나의 악한 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왕의 계획대로라면 그 왕의 명령을 받고 우리아는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 계획에 우리아가 따라가질 않는 겁니다. 집에 가서 아내 밧세바와 동침을 했어야 되는데 전쟁터에서 수고한 우리아가 집을 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야는 분명히 어명을 받았습니다. 근데 왕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집에 들어가서 자는 것을 거절하는 겁니다. 악인의 꾀가 지금 먹히질 않는 겁니다. 다윗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겁니다. 집으로 내려가는게 아니라 자기 부하들과 함께 자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다윗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 집에 안 내려갔냐고 이걸 또 물어봅니다. 집으로 내려가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는 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그때 다윗에게 전달한 우리아의 대답은 신하의 말이 아니라 마치 선지자가 다윗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얼마 전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저 목욕하는 여인이 누군가 알아봤을 때 그 신하들이 대답했던 말이 저 여인은 바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였습니다. 그 말은 그냥 사실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왕이시여 저분은 아녀자이며 남편이 있는 우리아의 아내, 그것도 전쟁에 나가 싸고 있는 군인의 아내가 아니니이까….신하의 입을 통해 선지자와 같이 다윗의 마음을 찌르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신하의 고백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으면 다윗은 죄에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근데 그걸 무시하고 큰 죄를 지며 무너졌습니다. 또 한번 하나님은 우리야를 통해 다윗의 마음을 찌르시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군사들이 목숨 걸고 전쟁 중이고 나의 상관 요압도 고생하며 밖에서 자고 있는데 어찌하여 내가 지금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내 처와 자리이까….영적 전쟁을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찌 지금 집에 가서 먹고 마시며 처와 잘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지자의 음성으로 받았으면 다윗은 그렇게 심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다윗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그 경고를 무시합니다. 대신 그가 한 행동은 또 다른 악인의 꾀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아를 불러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술 취하도록 막 마시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아가 당연히 자신의 이성을 마비되어 집에 들어갈 거라고 계략을 짜고 꾀를 낸 것입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그 두 번째 꾀도 실패를 돌아갑니다. 술을 취하도록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지켜야 될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우리야의 모습과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다윗 왕이 너무나 대조되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 바라보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사는데, 항상 합리화시키고 감추고 또 다른 죄로 덮으려 하는 죄의 사이클에 들어가게 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 눈이 가려져 하나님 나와 지금 함께 하심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자처럼 계속 죄를 덮으려고 하고 가리려고 악인의 꾀를 내며 완전히 무너질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죄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단이 주는 잘못된 생각이자 미혹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고 얼마나 많은 죄를 계속 지으며 얼마나 악인의 꾀에 빠져 큰 희생을 치르게 되는지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가 해야 될 선택은 분명합니다. 여러분들이 죄진 자리, 무너진 자리, 실패한 자리에 주저 앉아 있습니까?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그 현장에 있습니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이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고, 그때 하나님께 엎드리면 삽니다. 죄를 가리거나 숨기거나, 죄를 덮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으며, 죄짓고 무너진 그 현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고 회개하며 돌아와 새 출발의 기회를 얻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12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