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충성된 믿음 가운데 많은 열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분명히 아는 것을 통해 전해 주고 싶어서 이 골로새서를 쓰게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 당시 골로새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 하나님의 대한 분명한 고백과 신앙이 약해서 흔들리게 되었구요. 골로새라는 도시에 만연한 왜곡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믿기 믿는데, 예수님만 믿는 게 아니라 다신론적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예수님을 여러 신들 중에 하나로 여기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왜곡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신비주의를 따라가며 내 경험이나 체험을 절대화하고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상대화하는, 복음이 흔들리는 이런 위기와 왜곡 가운데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시며 예수 하나님만이 구원의 진리임을 믿는 그 절대적이고 확고한 신앙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믿는 게 신앙의 처음과 마지막 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소위 말하는 기독론을 아주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그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What Jesus has done…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신 놀라운 구원 사역,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셨던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신 가장 중요한 우주적인 사건이 바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 이게 가장 중요한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허락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는 말이 바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서 예수 그리스를 영접 하기 전, 우리의 영적 상태를 흑암의 권세 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 우리는 어둠의 권세 가운데 흑암의 권세 가운데 멸망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과 같은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물질 가치를 절대화하며 살게 되면 내가 건짐을 받아야 되는 존재이고, 내가 예수님 없이는 파산과 멸망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것을 모르고 살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흑암의 권세 아래 살고 있는 우리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이런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되는 자, 예수님이 없으며 파산 되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내가 예수님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게 복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더 주목해야 될 것은 그냥 흑암에서…가 아니라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결박하고 누르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공 상태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은 어둠의 중력과 눌림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를 누르는 힘이 있고 중력이 있으며 우리를 압박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힘에서, 깊은 어둠의 중력에서 우리가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내 스스로 나를 구원 시키는 것 내 스스로 나를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건 불가능 하다는 거예요. 그거 좀 어려운 말로 뭐라 자력구원이 불가하다…선언합니다. 스스로 나를 구원 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없다는 겁니다. 절대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그 능력과 눌림에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 종교들은 자력 종교를 강조합니다. 내 스스로 구원 받을 만하게 나를 변화 시키는 거죠. 수행을 통해 도를 닦는 것을 통해 내 스스로 구원 받게 하는 자력 구원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자력구원을 부정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타력구원을 진리로 붙듭니다. 외부로부터 구원의 힘 건져 주는 힘이 와야 내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고백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 천국으로 우리를 옮겨 주신 겁니다. 이사 하게 하시고 신분을 변하게 하신 겁니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죠. 부활을 통해 승리를 선포하신 일이죠. 그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 이름을 믿고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분의 보혈로 덮이게 되는 것이죠. 그분의 보혈로 덮인다는 말이 바로 뭐냐면 오늘 말씀의 속량입니다. 영어로 redeem…이라고 하는데, 기프트 카드 같은 거 받으면 그걸 쓸 때 redeem이라고 하는데, 이미 누가 돈을 다 지불한 카드인 것이지요. 그게 바로 무엇에 대한 값을 다 치루었다…redeem..속량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에 대한 삯, 값을 다 치르신 겁니다. 그리고 그 redemption code를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걸 우리는 믿음으로 취하고 그 구원의 선물을 아멘으로 받으면 되는 거예요. 이 속량과 이 죄사함의 은혜에 대한 그림자와 같은 이미지가 구약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합니다. 출애굽 사건인 유월절에 어린 양 사건, 그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저주와 심판이 넘어가는 사건, 라합의 집이 붙들고 있었던 붉은 줄이 그 여리고 성이 모두 멸망하는데 그 집만 구원 받는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여 우리가 속량, 즉 죄 사함을 받는다는 모든 그림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이 놀라운 우주적 사건을 기억하며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최고의 자리에 올려 드리며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며 구원자 되시며 예수님을 초점에 두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권면하고 있는 겁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만이 내 믿음의 대상임을 절대화 하며 오직 예수님만 구원자라고 우리는 고백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이 감격으로 다가오고 계십니까? 나는 예수님 없으면 흑암의 권세에 눌려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절망스러운 우리 인생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타력구원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천국으로 옮겨 가게 된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절대화하며 내경험과 체험을 상대화 하고 계십니까? 절대 변하지 않는 절대 가치는 내 지식이 아니고 내 경험이나 체험이 아니라고 예수 그리스도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에게 예수님은 여럿인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한 분, 나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고백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만을 우리는 구주로 고백하며 예수님만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예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며 오늘 하루도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한 인생, 예수님을 삶의 최고로 올려드리는 인생, 예수님 에게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2월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