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드디어 사사 입다가 암몬군대와 싸우기 직전, 이제 곧 결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여서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습니다. 사사 옷니엘도, 기드온도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그들이 적들을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자신에게 임한 것을 입다도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했을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붙들고 친히 싸우시는 주님 붙들고 하나님을 뒤따라 나가 영적 전쟁을 하면 되는데 입다는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을 하는데 바로 하나님과 협상을 하듯이 끔직한 서원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면 내가 승리 이후 첫 번째 영접하는 자를 태워서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죠. 그냥 서원이 아니라 끔찍하고도 극단적인 서원입니다.
왜 입다는 이런 말도 안되는 서원을 하게 되는가? 아마도 입다가 그 인생을 살면서 가져왔던 상처와 아픔, 서자로써의 힘들었던 삶의 그늘에서 그 원인을 좀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신의 약점이 있고 집에서 쫓겨 났던 아픔, 기댈 때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야인으로 살아온 입다에게 유일하게 지금 기회가 찾아왔고 이 전쟁을 무조건 잊어야 한다는 그 압박과 책임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그 절실하게 승리가 필요하니까 그 승리의 절실함을 위해서 그가 사람들에게 했던 협상이라는 방법을 하나님께도 쓰는 겁니다. 입다는 집에서 쫓겨난 후 어려워지니까 찾아온 이스라엘 장로들과도 협상을 하면서 말로 정확하게 주고 받을 것을 미리 얘기하죠. 암몬 자손과 싸울 때도 그냥 먼저 나가서 싸우는 게 아니라 먼저 협상을 하지요. 말로 정확하게 모든 것들을 다 깔아 놓는 겁니다. 입다는 큰 용사로서 전쟁만 잘하는 게 아니라 아주 지략이 있었던 협상의 달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입다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썼던 협상가로써의 전략을 하나님에게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겁니다. 입다의 서원이란 뭐냐하면, 내가 이만큼 통 큰 것을 걸 테니까, 하나님도 나에게 큰 것을 걸어서 나에게 승리를 주시라고 거래를 하고 협상을 하는 겁니다. 통큰 협상, 통큰 거래를 통하여 큰 승리를 하나님을 통해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통큰 거래를 앞에 두고 협상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특별히 여기서 주목해야 되는 것은 입다가 하나님을 협상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제안한 통큰 거래의 내용인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12장 31절 같은데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물로 사람을 바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고 그것을 가증한 행위로 금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입다는 하나님이 금지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이것을 통큰 협상의 도구로 하나님 앞에 사용하려고 했는가? 입다의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는 이 생각 자체가 어디서부터 왔냐 하면 이방 종교에 물든 생각에서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 모압과 같은 가나안 땅의 종교에서 많이 했던 수법이 자녀들을 번제로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신을 내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아이를 드리는 게 가장 효과가 있다 믿어서 아이를 끔찍하게 번제로 드린 일들이 종종 있어 왔습니다. 열왕기하 3장 26절과 27절을 보면 모압왕이 자신의 그 몰려있는 전세를 역전 시키기 위해 왕위에 오를 왕자를 번제로 드리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큰 위기 가운데 극단의 끔찍한 사람의 번제를 드림으로 타개 하려 하고 우상신과 협상하려 하는 이방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입다는 이런 가나안 종교와 이방 사람들의 가치관에 너무나 익숙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승리해야 되는 이 전쟁을 위해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으니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나아가는 영적 전쟁의 원리 대신,하나님에게 인간적으로 통큰 거래를 하려 하고 협상을 하려고 끔찍한 서원을 하는 겁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방법이고, 이방 종교의 방법으로 하나님 하고 거래하려는 하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큰 승리를 허락하셔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에서 큰 승리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잘 말씀을 읽어보면 압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보다는 입다의 실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잘못된 생각과 가나안 종교의 영향에 물들었던 입다는 하나님과 통 큰 거래를 한답시고 이런 말도 안되는 서원을 가지고 하나님하고 거래를 시도한 것을 부각하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 하나님을 협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 입다의 모습은 철저하게 가나안의 문화와 우상에 물들어 버린 입다의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입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 문화와 가치에 철저하게 길들여지고 물드는 삶이 내 행동과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자각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과 뭔가 통 큰 거래를 해서 아닙니다. 하나님은 협상의 대상도 통큰 거래의 대상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무릎꿇고 경배하고 하나님을 따라 갈 일만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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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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