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의 악행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남유다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아달랴의 악행은 한 개인의 일탈과 끔찍한 일로 보는 것을 넘어서 악한 세력이 다윗 가문에 씨를 말리는 영적 전쟁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 이스라엘에는 예후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아 아합 가문과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처단하고 진멸하는 일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신속하게 모든 것이 정화되며 하나님의 심판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북 이스라엘에는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남유다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다윗 가문의 씨가 말라 버리기 일보 직전의 큰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아합 가문과 바알 선지자들이 진멸을 당하고 있는데 반대로 남 유다는 다윗 가문이 악한 세력의 대표인 아달랴로 인해 진멸을 당해 지금 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겁니다. 남유다의 정략 결혼으로 왕가에 들어오게 된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아달랴가 이세벨의 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세벨도 아달랴도 그냥 악한 여인 정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한 세력의 대표로 등장합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악하면 북 이스라엘도 남유다도 영적 파탄을 가져오게 되고, 다윗 가문의 씨를 다 말려서 하나님 언약의 통로가 막혀 나중에 장차 오실 예수님이 그 씨로부터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단순히 아달랴가 정권에 욕심이 있어서 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끔찍한 악행 정도가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오시지 못하게 막으려는 악한 세력의 끔찍한 전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악한 여인이지를 성경은 선명히 증언합니다. 자기 남편도 비극적으로 죽었고, 자기 아들 아하시아 왕도 북이스라엘 왕과 함께 같은 날 비극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면 어미로서 인간이라면 슬퍼해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죽을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모든 자손들을 모두 처단했습니다. 남유다 왕인 자기 아들이 1년만에 객사에서 죽은 것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계기로 그 왕궁에 남아 있던 모든 왕족 후손들, 즉 자신의 손자 손녀를 다 죽이는 겁니다. 할머니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자기 손자 손주들을 자기 손으로 다 죽이는 만행은 사극이라고 생각해도 상상이 안되는 끔찍한 피바람이 왕궁에 불어 닥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달랴라는 존재는 이세벨 못지 않고 어찌보면 이세벨 다 더 끔찍하고 악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아달랴의 끔찍한 만행은 단순히 한 여자의 악한 기행이 아니라 사단 마귀를 대표하는 악한 세력이 다윗 가문의 약속의 자손들을 진멸하고 그 씨를 말리는 영적 만행인 것입니다. 그 아달랴의 만행과 피바람 속에 모든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 1살짜리 아이요아스를 고모가 몰래 빼내어 구출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어가는데 그 한 살 아기를 빼내서 몰래 숨기고 그 아이를 여호와의 성전으로 피신시키는 겁니다. 목숨을 걸고 그 1살짜기 아기를 숨기고 목숨을 걸고 그 아이를 여호와의 성전에 6년 동안 숨기는 겁니다. 아시아의 누이이자 고모인 여호세바가 없었으면 다윗의 가문의 씨는 모두 말라버리는 겁니다. 더 이상 왕위가 계승되지 아니하고 더 이상 그 다윗 왕가를 통하여 장차 예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꺼져가는 등불을 하나님께서는 끄지 아니하시고 이 한살짜리 아이를 살리심으로 희망의 불씨를 살리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 6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남유다의 여왕으로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 한살 짜리 아이 요아스가 목숨을 건지고 성전에 6년 동안 자라는 동안이 악한 여인 아달랴가 여왕으로 등극해 남유다에 깊은 암흑시대를 맞게 하는 것입니다.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여왕은 유일하게 이 아달랴가 여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관점은 이 아달랴를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윗 가문의 자손도 아니고 정통성도 없고 그리고 자기 본색을 드러내 다윗의 가문에 씨를 말린 악한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벨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로 대표되는 이런 악한 세력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며 흔드는 전략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과 결혼하게 만드는 겁니다. 세상과 결혼하여 세상의 기준에 물들어 젖어 살게 만드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 망각한 채 그저 나 혼자 건사하기도 어려운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복음의 씨앗을 다 말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일들을 계속 방해하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북 이스라엘과 정치적 안정을 위해 정략 결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가져왔는가에 대해서 성경은 엄중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세벨과 아합이 결혼한 것도, 그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와 남유다의 왕이 결혼한 것도 결국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세상과 결혼한 겁니다. 세상에게 자신을 다 내어준 결과가 바로 뭐냐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신 남유다와 다윗의 씨가 진멸 당하기 일보 직전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포로기 이후에 에스라가 시대에도 귀환한 사람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왜 그렇게 심각한 영적 타락으로 받아들였는가를 말씀을 통해 이해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에스라가 성전을 재건하여 지을 때도, 나중에 느헤미야가 성벽을 지을 때도 계속 등장하는게 그 성전을 세우고 성벽을 세우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 세력입니다. 개인적으로만 방해하는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방해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언약 신앙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흔들고 훼방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것이 모두 악한 자와 악한 세력에 의해 계속되는 하나님의 언약 신앙을 방해하고 흔드는 훼방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다윗 왕조가 이미 끊어진 거 같이 씨가 다 말라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멈춰선 거 같고 이미 그 불은 다 꺼져버린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박한 위기 가운데서도,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 1살 아기를 살리시며 그 아기를 통해 다윗 가문을 다시 세우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방법입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는데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가 왕이라고 떵떵거리고 있는 악한 여인 아달랴의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일을 방해하려는 악한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일들을 방해하고 흔들고 훼방하는 이런 악한 세력,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세력이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꺼질 거 같은데 꺼지지 않는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지속되며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처한 상황들이,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때로는 이렇게 꺼져가는 등불과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반드시 성취하시고 이루심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망과 낙망을 넘어서 소망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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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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