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어떤가에 대해서 영적 경고의 말씀을 계속해서 주고 계십니다. 같은 말인데 표현을 달리해서 반복해 강화하는 말씀이죠. 그들의 영적 상태는 파멸로 망하기 일보 직전인 소돔과 고모라 성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망하지 않는 유일한 비결은 얼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남은 자들 몇 명 때문에 겨우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아무리 반복해서 경고하셔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말씀을 듣고 돌아와도 살까 말까인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영적 상태를 망각하고 파멸로 질주하고 있는 상태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직면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파멸 직전에 멸망 직전에 소돔과 고모라 백성과 같은 상태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기에 강한 어조와 반복적인 경고로 그들을 찌르고 깨우는 선지자 이사야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파멸과 멸망 직전의 영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계속 제사를 드렸고 겉으로 계속 예배와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겉보기의 종교 행위는 끊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고 직면하지 않는 그들의 신앙을 이사야는 “성전에 마당만 밟는 자들” 이라고 경고합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지성소로 들어가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마당만 밟고 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와도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사람들만 만나고 가는 겁니다. 예배 드리러 와서 지성소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겁니다.
지성소의 본질로 들어가야 되는데 마당만 밟고 가면서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들을 향하여 경고하십니다. 너희의 마당만 밟은 신앙으로 반복하는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그들이 제사와 종교 행위를 반복하며 그렇게 가져오는 제물들은 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헛된 제물들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 제도를 주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나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기 위한 것이며 그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내가 죽는 겁니다. 피 흘려 죽어가는 동물들을 내 죄가 하나님 앞에 저렇게 심각하구나… 깨닫고 죄를 짓지 말아야지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오려는 이 제사의 정신이 나를 살리는 겁니다. 그게 제사의 목적인데 그 제사의 정신이 빠진 제물을 계속 드림으로서 그들은 헛된 제물만 계속 드리고 있었습니다. 본질을 잃은 제사는 겉으로 내가 제물 드리고 제사 드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적 어리석음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마음 없이 드리는 예배, 제사의 정신 없이 때우듯이 드리는 제사가 반복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무 실망하신 나머지 이런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 경고하신 겁니다. 헛된 제물과 함께 그들이 드리는 기도도 뭐라는 겁니까? 헛된 기도라는 겁니다. 아무리 많이 그들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헛된 기도라는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 해도,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아무리 겉으로 대단해 보여도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헛된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손에 여전히 회개하지 않은 피, 이웃들에게 피눈물 나게 한 피가 가득한 채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내 죄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거룩함과 성결함을 뺀 채 손에 피를 가득 묻히고 그냥 기도를 많이 하는 겁니다. 이웃에게 피눈물 나게 한 죄로부터 돌이키지 않은 채 손에 피를 가득 묻히고 그냥 나의 원함과 필요를 위해서 계속 열심히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리 해도 듣지도 받으시지도 않는 헛된 기도이니 그만 하라는 겁니다. 기도의 본질은 내가 죄인이고 내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나에게 대한 철저한 절망과 죄에 대한 철저한 인정이 하나님 앞에 나를 서게 하는 기도가 되는 겁니다. 나의 간절한 필요와 소원을 위해 반복적으로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기도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 앞에 가능성 없는 죄인으로서는 겁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는…이 영적 겸손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니고 의인으로, 불쌍히 여겨 달라는 엎드림 대신 내가 하나님 앞에 고개를 꼿꼿이 들고 청구서를 내밀듯이 기도 제목을 내미는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헛된 기도가 되는 겁니다.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고 영적 심각성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영적으로 파멸과 멸망 직전인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인데도 예배 안 빠졌고 헌금 드렸으니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착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시며 경고하시는 겁니다. 마당만 밟고 가는 예배와 제사 그만 하고, 이런 헛된 재물 그만 가져오고 이런 헛된 기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서지 아니하면 내가 하나님께 가능성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면, 결국 반복되는 예배와 기도는 모두 자기 의를 강화하는 도구만 되는 겁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대단해 보일지 모르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지는 모르나 그런 예배나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와 제사가 아니라 자기 의를 강화하는 도구이자 수단일 뿐입니다. 내가 빠지지 않고 이렇게 오랜 기간 이렇게 잘했다는 내가 중심이 된 종교 의식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당만 밟는 신앙을 넘어서는 비결, 하나님께 받으시는 제물과 기도를 드리는 비결,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망하기 직전인 내 영적 상태를 깨닫는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서는 것 뿐이고, 회개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겁니다. 나의 죄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진홍같이 붉은 나의 죄를 주님께서 눈과 같이 씻어 주시고 양털과 같이 깨끗하게 해주시는 겁니다. 본질과 정신을 잃어버린 채 오늘도 마당만 밝고 가는 헛된 예배 헛된 기도를 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경고를 이 시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혹시 나의 신앙생활이 지성소를 들어가지 않은 채 마당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 아닙니까? 내 영적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헛된 제사와 헛된 예배 헛된 기도를 계속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우리가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헛된 제물과 제사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이 빠진 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은 채 드리는 예배, 마당만 밟으면서 드리는 헌금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최고의 예배는 내가 하나님 앞에 가능성 없는 죄인으로 서며, 주님 앞에 두 손을 들며 나를 살려달라고 주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내가 하나님 앞에 가능성 없는 존재로 주님께서 주시는 긍휼만을 구하며 주님께 두 손 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헛된 예배와 기도가 아닌 늘 주님을 바라보는 예배, 주님 앞에 죄인으로 서며 가능성 없는 존재로 서는 기도가 현재형으로 회복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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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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