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벽기도 시간에 이사야서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구약 성경은 오경, 역사서, 지혜서 예언서의 순서로 되어 있어서 구약 맨 마지막은 말라기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와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히브리 성경을 Tanak이라고 하는데, 토라 (오경)의 T, 느빔 (예언서)의 N, 케투빔 (지혜서)의 K를 따서 타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성경의 순서는, 오경, 예언서, 지혜서의 순서인 겁니다. 예언서가 제일 뒤에 있지만 지혜서가 연대기적으로 봤을 때는 가장 뒤에 있는 이야기들로 대부분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대기적으로 우리는 예언서를 먼저 살핀 후에 그 다음에 지혜서로 들어가려 하고, 예언서에 첫 성경이 바로 이사야입니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어서 구약 성경에 있는 복음서라는 별명이 붙은 말씀입니다. 구약이 39권이고 신약이 27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사야서도 크게 1-39장까지와 40-66장으로 나누어 집니다. 앞에 39장까지는 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아주 혹독한 심판에 대한 예언의 메시지가 등장하고, 그 다음 40장-66장은 그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구원과 회복을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큰 주제 두 가지는 심판과 구원/회복은 성경 전체 주제이기도 합니다. 구약 39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게 결론입니다. 주신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게 바로 옛 언약인 구약의 주제입니다. 신약의 주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게 바로 새로운 언약인 신약의 핵심입니다. 이처럼 이사야서는 성경 전체의 주제인 심판과 구원/회복을 압축한 구약의 복음서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서가 중요한 이유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예언서가 이사야서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신약에서 이사야를 가장 많이 인용하셨을 정도입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게 되면 이사야서 61장을, 고난받는 종이라는 그 놀라운 모티브도 이사야서 53장을 통해 등장하는 인용 성경 구절입니다. 이사야서는 신약에 이렇게 많이 인용될 정도로 중요하고 묵직한 예언의 말씀임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주전 8세기인 남유다의 웃시아,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입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북 이스라엘의 아모스와 호세아가 동시대의 예언자로 활동했고 남유다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언서는 과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관통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삶의 자리와 그 시대를 아는 것은 말씀을 이해하는데 참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필 것은 이사야서를 이해하는 데 큰 맥과 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이름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이름은 어떤 의미냐 하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입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조금 더 정확하게 직역하면 여호와만이 구원이시다. 이사야의 이름인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의미를 가진 비슷한 이름들이 성경에는 여러 곳에 등장합니다 이사야의 이름과 비슷한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의 의미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또한 유명한 선지자의 이름인 호세아도 비슷한 의미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여호수아, 호세아가 그 이름에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호세야 선지자에게 명하셨던 게 바람난 아내인 창녀 고멜을 데리고 결혼해서 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영적 현주소라는 것을 선포하시기 위해 여호와만이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의 호세아가 바람난 창녀인 고멜과 결혼하는 겁니다. 그게 그들의 영적 상태다 것을 보여 주시는 아주 슬픈 이야기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독생장 예수의 의미도 여호수가, 즉 여호와만이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그 이름의 의미를 통해 예수님만이 구원이심을 선포하는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맥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 심판의 말씀의 가장 큰 핵심은 뭐겠습니까?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에게 정말 여호와만이 구원이신지를 묻는 겁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러는데 정말 여호와만이 너희에게 도움이신지 물어보고 질책하는 말씀이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질문의 도전 속에 끊임없이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백성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겁니다. 반대로 1-39장에서 계속 이사야 선지자가 심판을 예언하고 경고하는 이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과 질책을 받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 불구하고 여호와만이 나의 도움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며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내 인생의 도움과 유익이 무엇인가를 계속 구하며 찾아다니는 인생입니다. 남유다도, 북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나에게 우리 나라에게 도움과 유익이 무엇인가를 구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도움이라는 것을 부인한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데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심을 믿고 고백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라고 전적으로 매달리는 대신에 하나님에게도 도움을 구하고 세상에도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에게도 도움을 구하고 주변 나라들에게 도움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의지하고 돈에게도 의지하는 이 겸하여 섬기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겸하여 섬기는 삶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경시 여기고 세상을 중시 여기며 사는 삶입니다. 마치 호세아가 창녀 고멜과 결혼하여 사는 것과 같은 영적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본심으로 들어가면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더 중요한 도움이 되고,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주변 나라의 힘과 군사력이 더 중요한 도움이 된다고 믿고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나에게 더 중요한 도움이 된다고 붙들고 사는 겁니다. 실제로 겸하여 붙들며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방점을 두고, 눈에 보이는 군사력과 돈의 힘에 방점을 두고 살아가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심판과 계속해서 책망을 받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도움이심을 거절한 게 아니라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라 것을 진짜 믿지 않은데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지 않은 인생, 하나님 한 분의 도움으로는 부족한 인생, 그래서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세상과 군사력과 돈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겸하여 섬기는 게 그들의 불순종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아닌 주변 강대국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이 아닌 눈에 보이는 물질의 힘을 붙들고 살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는 역사가 바로 그들의 망하는 역사다…그게 바로 이사야 1-39장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도전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천국 백성 된 자들이고, 하나님 백성된 자들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에게 찌르는 말씀으로 계속 물어보실 겁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신가? 나는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한 인생인가? 저와 여러분들이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추하며 직면해야 합니다. 너희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 정말 천국 백성이라면, 여호와 하나님만이 너의 도움이신가….끊임없이 이사야서는 우리에게 찌르는 말씀으로 물어 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심판과 채찍의 말씀으로 계속 우리를 찌르실 겁니다. 돈을 버는 진짜 이유는 돈이 나에게 절대적 힘과 능력을 주어서가 아니라 돈에 자유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겁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들이 열심히 살아야 되는 이유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에서 자유하기 위해 세상에서 열심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자유해 될 대상을 내가 의지하고 붙들어 하나님을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오늘도 이사야 이름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바로 선 우리의 순전한 예배라는 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나에 대한 철저한 절망과 몰락, 나의 해체를 경험하는 겁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고백하며 동시에 하나님만을 도움으로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붙들며 나아가는 것이 참 예배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사야라는 이름을 통해 드리는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심을 철저하게 고백하며, 어느 상황에서도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믿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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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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