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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저희는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새벽 기도 시간에 말씀의 은혜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52장으로 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개론과 같이 세 가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누구인가?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는 언제인가? 예레미야가 전한 핵심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세 가지를 통해 큰 그림을 잡으며 예레미야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예레미야 선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오늘 말씀에서 아주 짧고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힐기아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그 집안 배경을 베냐민 땅 아나돗 제사장 가문이라고 증언합니다. 이 말을 그냥 넘기지 말고 주목해서 봐야 되는 것은 제사장들은 일반적으로 어디 살아야 되냐면 예루살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예루살렘에 있어야 되는 제사장들이 왜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가에 대해 궁금함이 있어야 합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제사장들이란는 건 쉽게 이해한다면 좌천되어 귀향간 제사장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배경을 열왕기상 2장에서 알 수 있는데, 다윗 왕이 죽은 후에 하나님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그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나머지 왕자들이 왕위를 놓고 서로 쟁탈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 그 왕위를 노렸던 자가 솔로몬의 형이었던 아도니아라는 왕자입니다. 아도니아가 다윗 이후에 왕이 되려고 노력할 때 아도니아 편에 섰던 사람들이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었습니다. 아도니아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솔로몬이 왕 위에 오르게 되면서 군대장관 요압은 죽임을 당하게 되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귀향 보내지게 됩니다. 그렇게 좌천되고 귀향 갔던 제사장 아비아달 집안 후예들이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베냐민 땅 아나돗 제사장들입니다. 그렇게 몰락하여 잊혀진, 좌천되어 귀향갔던 제사장 가문이 바로 예레미야의 집안이었다는 것, 이게 예레미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몰락해 쫓겨난 가문이어도, 좌천되어 귀향간 가문이긴 하지만 예레미야 집안은 제사장 집안입니다. 뼈대 있고 분명한 기준을 붙드는 제사장 가문으로서 초야에 묻혀 하나님의 진리와 길을 따르던 집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사장 집안 아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몰락한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 변방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예언하는 선지자로 남유다를 항하여 눈물로 외친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서 입니다.
두 번째로,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가 언제인가…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 보게 되면 그 활동 시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시아왕 13년 때부터 예루살렘이 다 망하고 무너져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활동하는 시대는 남유다가 망하는 징조로 내리막길을 계속 걷고 결국 완전히 망하는 때까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활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와 예언자들의 활동이 많다는 것은 시대가 평탄하고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 있을 시대가 아니라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뜻을 떠나고 멸망의 길로 질주하는 어둠의 때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어둠의 때일 수록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끊임없이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백성들을 깨우신다는 겁니다. 또한 예레미야서는 어떤 식으로 기록됐는가 하면 바룩과 같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필한 사람을 통해 두루마리에 필사하며 기록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룩과 같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전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 번째,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입니다. 예레미야서의 메시지는 임박한 남유다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눈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자체가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만큼 많이 울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이 울었겠습니까? 그 시대가 너무 어둡고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라가 망해 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곧 망하는데, 말씀을 듣지도 않고 돌이키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겁니다. 임박하게 찾아올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며 흘리는 예레미야의 눈물은 단순히 예레미야의 눈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담아 예레미야가 계속 그 시대를 바라보며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멸망을 앞에 두고도 정신 못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그의 백성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안타깝게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인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한두 번 하고 말씀을 안 들으면 야 이제 너 됐다, 그렇게 들을 마음 없으면 나도 포기할게…이러셔도 되는데 끊임없이 하나님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을 보내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게 하시며 그 말씀을 전하라는 거예요. 백성들은 듣고 싶은 마음도 없고 들으려는 의지도 없는데 그 말씀을 계속해서 주시는 겁니다. 늘 주시는 말씀이 너희 지금 곧 망한다…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정신 차리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너희가 그렇게 망하는 게 결국 하나님 뜻이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게 하나님 뜻이다…라고 이런 말씀들을 전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지만 이런 말씀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신 이 말씀을 있는 그래도 듣던 안 듣던 상관없이 계속 눈물을 담아 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주신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너무 어려운 겁니다. 특별히 예레미야서를 보게 되면 말씀과 함께 특별한 기적이나 이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 선지자나 엘리사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말씀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이사도 함께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신 말씀을 전할 때, 아무래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관심이 더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놀라운 기적과 이사를 보이는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확 그곳에 몰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지에게는 말씀을 계속 임하지 그런 기적이나 이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물로 그냥 하나님의 말씀만을 있는 그래도 전하는 겁니다. 끊임없이 눈물과 함께 말씀만 전하는 거예요. 언제까지요? 남유다가 결국 망하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로잡히셔 갈 때까지 하나님이 말씀만을 계속 전하는 겁니다. 우리가 앞으로 예레미야서의 52장 말씀 전체를 계속 배울 텐데 그 말씀을 계속 붙들고 읽으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고 찔리고 부대끼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찌르는 경고의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면 우리는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를 원하며, 은혜만 바라보고 돌아오기를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내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눈물과 선포되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눈물 젖은 마음을 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며, 그 날이 임박하게 찾아오고 있음을 잊지 않으며 주님 앞에 깨어 있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은혜가 우리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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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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