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예후에 대한 인생 평가입니다. 사실 열왕기서 전체가 계속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시는 왕에 대한 평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걸 통하여 우리 인생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평가받는 인생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평가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삶이 없습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시고, 하나님 앞에 audit 받아야 하는 인생임을 잊지 않을 때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매우 좋습니다. 예후에 대해서 너의 인생 참 잘살았다….말씀하시며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하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일했고 하나님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는 신실한 자였다는 평가입니다. 영적으로 파탄의 지경에 난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돌이키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루시는데 선명히 쓰임 받은 도구,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다 행한 자가 바로 예후였습니다. 예후의 담대함으로 말미암아 남유다의 왕과 북 이스라엘의 왕이 심판으로 하루에 죽게 되었습니다. 아합의 70명 아들들이 모두 하루에 목베어 죽임을 당하고, 남유다 아하시야 왕 형제들 42명도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모아서 처단했고, 바알 산당 허물고 그 자리를 화장실로 만들었습니다. 바알이 주는 것들은 배설물로 여기겠다는 것을 선포하며 예후를 통해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고, 이런 종교개혁을 담대하게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4대, 약 100년 정도를 가장 장수를 누리는 그런 왕조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후가 안타깝게도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 마이너스가 있었다는 것도 동시에 평가하십니다. 전반적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고 정직하고 행하며 바알 우상을 제하는 귀한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은 건 참 좋았는데 온전하지 못한 하나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북 이스라엘을 시작하게 한 여로보암의 죄인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바알 우상은 그렇게 철저하게 다 무너뜨리고 진멸했는데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못한 겁니다. 금송아지 신앙은 사실 북이스라엘을 지탱하는 힘이자 정체성이기도 했습니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려면 아무래도 남쪽으로 내려가 예루살렘 성전을 가야지, 거기서 예배 드리는 게 진짜 예배지…라는 그런 마음의 열망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예루살렘을 향한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만든 게 자체적으로 예배 드리는 처소들이고, 그 안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향하여 드리는 예배와 제사 대신 쉽고 편하고 간단하게 드리도록 대체물을 만들었고,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북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신앙이었습니다. 사실 바알 우상이나 금송아지 우상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할 정도로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며 집착하게 만들고, 거기에 절대 가치를 두는 위험성을 가지는 이런 왜곡되고 변질된 신앙, 얄팍한 영성에서 떠나지 않다는 겁니다. 그게 만약에 없으면 나라 자체가 흔들린다는 불안함 때문에 그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는 멀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많은 업적과 하나님 앞에 신실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예후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못했고 결국 예후는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행한 것 같은데, 전심 즉 내 온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며 말씀을 붙들고 살진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도 열심도 없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과는 차별되게 예후에게는 분명한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갈망과 열심을 하나님께서는 들어 사용하신 것이고, 예후는 하나님께 선명히 쓰임 받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나아가지 못했냐는 전심으로는 나아가지는 못한 겁니다. 열심은 분명히 있었으나,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예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예후는 그렇게 전심을 다해 이루지 못했고 그것을 하나님은 매우 안타까워 하셨다는 겁니다 말씀의 통해 주시는 예후에 대한 평가를 마음에 새기는 지혜가 있기 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된다…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열심과 갈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그 뜻을 행하며 살기를 원하는 갈망과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없는 사람들은 먼저 이 갈망과 열심을 달라고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갈망과 열망을 힘써 나아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늘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있고 열심은 있었는데,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라 행하지 못하고 아쉽게 끝난 인생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힘써 나아가야 할 삶의 내용입니다. 안타깝게도 바알을 멸하고 다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다 진멸한 거 같은데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한 예후, 열심은 있었지만 전심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예후의 신앙이 가져온 결과가 뭐냐 하면 자꾸 북 이스라엘이 전쟁에 휘말리고 나라의 영토를 점점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서 땅을 잘라내기 시작하심…이라고 증언하는데, 하나님이 땅을 잘라냈다는 건 나라 영토를 빼앗기게 하시는 겁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금송아지를 떠나지 못한 결과가 주변 나라들이 계속 공격을 하며 땅을 빼앗기게 되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황폐해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모하십시오.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기뻐하는 삶에 내 인생이 집중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늘 깨닫고, 하나님과 같은 방향과 같은 목적지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살아가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잘 행하며, 특별히 하나님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며 살아가는 인생, 이런 삶을 사모하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인생이 하나님에게 카운트 되는 시간, 하나님 앞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에 더 인생을 쏟는 지혜로운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먼저 나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갈망이 사라졌다면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갈망이 분명한 인생이 되기를 간구하십시오. 더 나아가 내가 평생 힘써 나아가야 될 삶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 평가받는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열심을 넘어 전심으로 나아가는 그 복된 인생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내용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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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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