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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우상 숭배 일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나가고 신전에 나가서 제사도 드리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양다리 신앙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금송아지 신앙으로 변질시키는 것을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양다리 신앙과 금송아지 신앙이 왜 예수님만을 믿는 신앙과 배척되는 것인지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그들은 그냥 우상 숭배하는 신전에 가서 그냥 앉아 있다가 오는 걸지 모르지만 그 배후에는 더 깊은 문제가 숨어 있는 겁니다.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은 우상의 재물을 먹고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참여한다”는 말은 우리가 어제 배웠지만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교제와 소통하는 것이자 심지어 한 몸이 되는 신비를 경험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그렇기에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고 그 제사 중에 제물을 함께 현장에서 먹는 것은 바로 우상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과 교제하고 소통하면서 참여하게 되면, 결국 그 우상과 하나되는데 내 마음을 여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 우상의 신전에 나아와 그 예배와 제사를 참여하는 것은 결국 내가 그 우상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은 귀신과 우상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분명히 경고합니다. 우상 숭배의 일을 피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귀신과 악한 영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상에 숭배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신전을 들락날락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드려야 할 마음을 귀신과 악한 영에게 마음을 다 빼앗기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제사를 드리고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냐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순히 그냥 신전에 가서 제사에 앉아 있는 것일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영적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우상의 신전에 들락 날락 하고,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게 되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우리가 악한 영과 귀신에게 교제하고 소통하도록 내 마음을 내어 주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구약 성경부터 신약까지 끊임없이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수님만을 섬기라 강조하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님이 아닌 귀신과 악한 영과 교재하고 소통하는 이런 우상숭배에 빠질 수 없고 빠져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같이 눈에 보이는 우상 신전에 나아가진 않지만 눈에 보이는 여러 우상들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는 세상의 흐름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예수 믿는 성도임에도 이 세상의 물질과 돈이 이미 신이 되어 버렸고, 마음을 물질과 돈과 힘에 다 빼앗겨 굴복하고 엎드리며 그걸 내 인생의 절대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큰 도전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상을 겸하여 붙들고, 예수님과 우상을 붙들면서 사는 삶이 바로 우상 숭배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가볍게 여긴 치명적 영적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점쟁이를 찾아가며 마음이 불안할 때는 자기 미래를 점지한다고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머리를 들이밀고 헌금하고 있는 이런 모습들이 결국 귀신과 교제하고 소통하도록 나를 내어주는 일이자, 자신을 망하게 하는 첩경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우상의 신전에 출입하며, 그 제단에서 제물을 먹고 참여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분명히 알라는 겁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첩경임을 잊지 말고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상대주의 신앙에는 갈등이 없고 핍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종교가 동일하고 서로 잘 지내고 서로 화합하자 평화롭게 지내자 여기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고 예수님만이 진리이고 예수님만이 생명이라고 고백하며 선포할 때 여기서 갈등과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보편적으로 품어야 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분명히 내 이웃들과 잘 지내며 함께 나아가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상대주의가 아니고 절대주의이며 예수님의 이름은 여러 신들 중에 하나가 아닌 유일한 신이며 유일한 구원자이며 유일한 그리스도이며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는데 우리의 신앙에 방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분명히 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전에 가서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내가 바로 귀신과 악한 영과 교제하고 소통하도록 나를 드리는 일이며 그 제사에 참여함으로 우리가 그 우상과 하나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분명한 복음에 내가 분명히 서 있어 이런 우상숭배의 일에 빠지지 않도록 분명한 선긋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대신 귀신과 교제하고 소통하려는 모든 가능성을 다 잘라내는 결단, 이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만이 주님이심을 분명히 고백하는 성도들은 겸하여 섬기려는 모든 것들을 다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귀신과 교제하고 소통하는데 내 마음을 드리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붙들며, 예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일에만 참여하는 말씀의 기준이 분명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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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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