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시며 아합의 집안에 대한 심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왕과 북 이스라엘 왕이 심판 받아 한날에 죽었습니다. 아합의 부인이자 악한 여인의 대명사 이세벨이 심판을 받아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말씀을 통해 아합의 70명 아들들이 모두 목베임을 당하며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하게 심판하신 거 같은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남유다 아하시아왕의 형제들을 심판하시고, 아합의 잔당들을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바알 선지자를 진멸하며 심판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치리만큼 계속 죽고 진멸하심이 이어지는 이유는 아합 집안의 불순종과 우상 숭배의 죄가 이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것과 함께, 그들의 죄는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남유다 아하시아 왕의 형제들이 심판 받습니다. 남유다 왕 아하시아의 형제들이 지금 북 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왔습니다. 찾아온 이유가 이미 심판 받아 죽은 아합의 70왕자들을 만나러 남쪽에서 단체 방문 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시아 형제 42명이 예후의 손에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그들이 심판 받아 죽은 이유는 정치적 계산을 통해서 북이스라엘과 맺은 정략 결혼을 해서 북 이스라엘에 해로운 불순종의 죄가 남유다에 다 흘러들어 남유다도 영적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을 엄중히 물으시면서 남유다 아하시아 왕의 모든 형제들도 다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은 운명을 같이하는 겁니다. 좋은 운명도 나쁜 운명도 한배를 타고 가는 게 결혼이요. 그래서 결혼을 성경에서는 영적인 일이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고 정략 결혼과 같은 결혼의 문제를 계속해서 구약에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아합의 70 왕자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아합에게 속한 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다 씨를 말리는 겁니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들은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는 겁니다. 진멸하듯이 모든 것을 싹 쓸어 버리시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남겨두면 그것이 이스라엘을 또 한번 무너뜨릴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민족 전체를 영적으로 파탄 나게 한 책임을 물으시며 이렇게 엄중히 심판하시는 겁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합 집안을 심판하는 도구로 예후를 쓰고 계시고, 그 예후와 함께 솜을 잡고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들을 정화하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준비되는 인생입니다. 언제 어떻게 쓰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늘 쓰임 받기 위해 우리가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후를 하나님께서 쓰신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 겁니다. 그에게 지혜도 있었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담대하게 추진하는 용기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넘어 이렇게 쓰임 받기 위해 준비된 예후의 마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 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으로 예후에게 준비되었던 것은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을 남에게 보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분명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는 새벽 예배를 지키며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내 마음에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이 불타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주님 손에 내가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사모하는 그 열심이 나를 사로잡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쓰임 받고 싶어하는 열심과 갈망을 반드시 선용하신다는 겁니다. 두번째로 남아있는 바알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모두 진멸하는 이야기가 길게 증언되고 있습니다. 바알 우상이 옛날에 나와 상관없는 우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있는 여전한 큰 영향력을 주는 도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알 우상은 쉽게 말해서 이 세상에서의 번영과 물질을 절대 가치에 두고 하나님과 천국을 상대적 가치에 두는 삶입니다. 내가 정한 절대 가치를 위해 두고 하나님을 필요한 존재로 끌어다 쓰는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게 바알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바알 숭배를 겸하며 양다리를 거치는 겁니다. 이 세상의 번영과 성공과 물질에 절대 가치를 두고 하나님 나라와 뜻은 상대화 시키며 도구화 시키는 것을 우상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 바알 우상은 우리 삶 가운데서도 심각하게 직면하는 도전입니다. 그 바알 우상숭배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통해 북 이스라엘에 들어왔고, 정략결혼을 통해 남 유다에 들어와 온 민족을 무너뜨리게 만든 겁니다. 여호와를 섬긴다 그러면서 바알 우상에 기웃기웃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수많은 여호와의 종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알 우상을 굉장히 성경은 심각한 죄로 여기며 모든 바알 선지자들을 아주 철저하게 배격하며 진멸하고 무너뜨리는 얘기가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배격하며 진멸합니까?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처단해 진멸했고,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을 불사르고 바알의 신당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큰 승리 이후 모든 바알 선지자들을 진멸한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잡초와 같이 금방 바알 신앙이 올라와 이렇게 많은 바알 선지자들이 다시 양산되었고, 백성들을 영적 파탄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바알 우상에 절절 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고하며 바알 선지자들을 다 잡아 죽이고 바알 산당을 다 허물고 심지어 그 자리에 화장실을 만드는 겁니다. 바알 우상이 주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겠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을 뿌리 뽑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처절하고도 철저한 심판을 통해 죄에 대해 분명한 경각심을 갖기 원합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들이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잘못된 우상숭배를 정화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 늘 준비하며 예후와 같이 이렇게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이 나의 인생을 이끄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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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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