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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 말씀을 받아 마음에 심기울 때 해석과 적용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해석과 적용이 주신 말씀 그대로 담지 않고, 잘못된 해석이나 왜곡된 해석을 한다거나 전혀 말씀과 동떨어진 해석을 해서 내 마음에 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절을 딱 떼 가지고 그 말씀을 하나를 깊이 곱씹으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그런 해석에 위험하고 또 조심해야 되는 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본래 의미를 벗어나서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기 쉽습니다.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맥락 안에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받으며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맥락과 전체적 그림 가운데 왜곡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겸손한 태도가 우리에게 참 필요합니다. 왜곡과 잘못된 적용이 많은 대표적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밖에 주시지 않는다…. 내게 갑자기 어려움이 찾아오거나 큰 고난과 큰 재난이 다가올 때 우리에게 딱 떠오르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내 인생에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하나님이 다 허락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나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시는 것이야…그러니 모든 시험은 너희가 감당할 수 있다…이렇게 해석 적용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특별히 주변에 어려움과 고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권면한다고 이 말씀을 쓱 꺼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밖에 주시지 않아.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그랬으니까 믿음으로 인내로 견뎌...그래서 당한 시험 속에 신음할 때마다, 모든 것을 자기 의지 부족, 믿음의 부족으로 여기도록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이 그렇게 해석되고 적용되는 게 맞는 것인가…우리는 이 말씀을 맥락과 앞뒤 말씀과 연결을 통해 큰 그림으로 진지하게 깊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은 고린도전서 10장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증언하고 있는 감당할 만한 시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말씀 속에서의 그 시험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이 시험이라는 단어는 “trial or suffering”이 아니라 “temptation”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게 해석과 적용에 핵심입니다. 이 시험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공통적으로 예외 없이 당하는 재난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 삶에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그 고난이나 어려움을 얘기하는 게 아라는 겁니다. 이 부분을 영어로 읽으면 정확하게 이 말씀이 분별됩니다. God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시험을 당한다는 말이 바로 be tempted…미혹 당하다의 의미이고 감당할만한 시험이란 감당할 만한 미혹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하나님은 너희가 감당할 만한 미혹 외에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험이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 당하신 그 미혹을 얘기하는 겁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이 시험은 고린도전서 10장에 등장하는 세 가지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세 가지를 사도 바울은 증언하는데 그 세가지 미혹이 바로 오늘 말씀의 시험입니다. 왜 그들이 광야에서 그렇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늘 인도함을 받고 만나와 매출하기로 늘 공급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그렇게 망하는 백성이 되었는가? 그 세 가지가 우상숭배와 음행과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험하는 것인데, 이게 바로 오늘 말씀의 시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할 것이 없나니….” 이 말씀을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뚝 떼서 그냥 내 인생에 당하는 재난과 어려움에 적용하는 것은 굉장히 왜곡되고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인생에 갑자기 어려움과 고난, 큰 병이 찾아왔을 때 그 가운데 어쩔 줄 몰라 할 때,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잘못된 적용으로 큰 시험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맥락 가운데 큰 그림을 이해하며 해석하고 성경적으로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미혹 가운데 뭐를 내신다는 겁니까?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겁니다. 사단에게 미혹 당하실 때 예수님에게 그 피할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셨죠. 사단이 돌을 떡으로 다 만든다고 예수님을 미혹했을 때 그 미혹을 이기시고 피할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으로 사는 존재라는 말씀으로 그 미혹을 이기신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능히 우상숭배를 피하고, 음행을 피하며, 원망과 불평의 삶을 피할 길을 반드시 내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임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본질을 우리가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선 줄 아는 자는 넘어지고 자빠질까 조심하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잘한다고 착각하면서 우상숭배에 자빠지고 음행에 자빠지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빠지고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자빠지고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대표적으로 교만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감사가 사라진 당연한 삶을 살아가는 삶. 그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들 다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이 정도면 됐고 내 믿음 강하고 나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이 모든 교만한 착각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왜 우리가 그런 잘못된 착각에 빠지게 되는가 하면 내 신앙의 기준을 내 주변에 있는 옆에 사람들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 잘 나오지 않는 사람과 비교하니까 새벽기도 나오는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거 같고 주변에 여러 사람들을 보면 내가 그들보다 난 거 같고 그래서 스스로 믿음이 강하고 믿음이 크고 나는 정말 좋은 신앙인이라 착각하는 겁니다. 그런 착각이 영적 교만으로 이끌고, 교만해지만 감사할 것들이 당연해지면서 감사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선 줄로 착각하다가 우상 숭배에 자빠지고 음행에 자빠지며, 불평과 원망으로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 줄 아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망하는 것을 증언한 이유는 말세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주신 본보기임을 잊지 마십시오. 선 줄로 착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해야 삽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피하고 음행을 피하고 원망과 불평의 인생을 피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인생을 피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예수님 꼭 붙들지 않으면 큰일 나는 존재임을 철저히 고백하며 살아가는 게 신앙생활 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붙들지 않으면 금방 자빠지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고 겸손히 십자가 앞에서 늘 넘어질까 조심하며 은혜만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 그게 신앙 생활 잘하는 비결임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이 주시는 그 은혜를 하나도 가감없이 내가 받겠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선 줄로 착각하지 말고 늘 넘어질까 조심하며 은혜만을 붙들고 주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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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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