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다윗왕의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하는 순전한 모습을 넘어 사람들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선한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은혜를 갚으려는 선의를 악의로,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악한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정점에 있을 때 모든 것이 안정화되고 승승장구하는 최고의 왕에 올랐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께 기쁨되기 원하는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은 흘러나와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잊지 않고 기억하였습니다. 사실 다윗왕과 같이 부러울 게 하나 없는 왕이 되면, 그렇게 성공하고 위에 올라가게 승승장구하게 되면 자신의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때, 어려웠던 때를 쉽게 잊어버리고 망각하기 쉽습니다. 특별히 그 자리까지 올라갈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움 받은 것을 다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도 사람들을 통해 받게 된 은혜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긴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 기억을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데 돈을 빌린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는 게 인간의 죄성인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을 통해 치유와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은혜를 기억하고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선명히 증언합니다.
다윗왕의 위대한 점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주셨던 은혜들도 잊지 않고 망각하지 않고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웠던 그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을 통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여러 사람들을 잊지 않고 그 은혜를 계속 갚고 기억하는 이야기가 말씀에 계속 등장합니다. 저번 주에 배웠던 요나단의 아들이자 장애인인 므비보셋을 찾아 왕궁으로 불러 왕의 식탁에 초대하고 평생 함께 식사하는 특권을 주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특권을 준 것은 다윗이 어려웠을 때 자신을 도운 요나단과의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에서 아람왕이 사망하자 어려웠을 때 자신을 도운 것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고자 조문 사신을 보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다윗왕의 예전 은혜를 기억하고 보내는 호의에 대한 반응입니다. 다윗왕이 어려웠을 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호의를 베풀려고 하는데 그 호의를 오히려 악으로 갚는, 선의를 악의로 갚는 자가 등장하는데 바로 암몬 자손의 왕 하눈입니다. 예전 어려웠을 때 호의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며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은혜를 베푸는데 그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모자라 악으로 갚으며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눈왕의 아버지가 다윗이 어려웠을 때 도움 준 것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을 선한 마음에 문상을 보냈습니다. 진심으로 애도하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자기 사람들을 보내는데 이런 다윗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낸 문상, 과거 은혜를 기억하는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선의를 악의로 매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눈 왕 주변에 있는 신복들 때문이고, 그들의 구부러진 마음으로 전하는 잘못된 조언들 때문입니다. 다윗왕의 이름으로 조문 온 사람들을 향해 저들은 우리 땅을 엿보고 탐지해서 쳐들어오려고 하는 스파이들이라 몰아세웁니다. 어떻게 이렇게 선의를 악의로 해석하고, 같은 일을 보고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가…. 마음이 삐딱하기 때문이며 마음이 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눈왕의 비극은 자기 주변에 이렇게 굽어진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었다는 것이고 그런 구부러진 마음의 속에서 나오는 참모들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곡되고 부풀려진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잘못 해석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을 하나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삐딱하게 말하고 꼬아서 말하고 항상 그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심하게 굽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한 다윗의 조문이 비극으로 끝나게 되며 선의를 악의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다윗의 조문단들을 잡아 수염도 깎고 엉덩이도 까고 목숨만 살리고 큰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수염을 다룬다는 것은 종이 된다는 상징이기도 했고 사람의 목이 잘리는 것보다 더 수치스럽게 여기는 게 엉덩이를 보이는 것인데, 엉덩이를 다 까며 왕의 사신을 그렇게 철저하게 망신을 주고 쫓아내는 겁니다. 다윗 왕의 사람들을 그렇게 모욕하고 망신주는 것을 통해, 다윗왕을 그렇게 철저하게 망신 주고 모욕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내 인생이 잘 되고 성공했을 때, 나 혼자 잘 나서 이 자리에 올라왔다고, 내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일 뿐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사람들의 은혜와 그들의 도움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은혜를 베풀며 살아가십시오. 동시에 이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선한 일로 좋은 의도로 이렇게 은혜를 갚고 선의를 가지고 베풀었지만 이렇게 선의를 악의로 매도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 빠진 사람들, 마음이 비틀어진 사람, 마음이 구부러진 사람들은 이렇게 선의를 악의로 바라보고 매도하는 일들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실망하지 않는 지혜를 말씀을 통해 배우기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주변에 이렇게 분별없이 구부러진 것을 말하며 늘 부정적인 것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되면 우리도 분별력이 이렇게 흐려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고, 내 주변에서 내가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말들을 내 마음에 이 시간 쌓고 있는지를 반성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이 보내준 도움을 잊지 않고, 늘 은혜와 감사를 흘려 보내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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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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