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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경고의 말씀을 계속 선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방치하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계속해서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돌아오지 아니하면, 지금 당장 돌이키지 아니하면 임박한 화와 심판에 대해 직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이란 말을 훨씬 더 좋아하고 은혜라는 말을 훨씬 좋아하지만, bad news에 직면하지 않고는 good news가 없듯이, 나의 현재적인 실체에 대해 분명히 직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화와 심판에 대한 심각성이 없이는 복이 없고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 부분에 “화 있을 진저..”의 경고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화 있을 진저…” 라는 관용어는 하나님께서 임박한 화와 심판을 예언할 때 주로 사용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심판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임박해 있다…화가 곧 닥칠 자들이라는 것을 선언할 때 “화 있을진저..”라는 관용어를 쓰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화 있을 진저…”의 대상은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고, 두 번째는 아수르 나라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우리 마음속에 담아 심판과 화가 임박한 이 시대에 동일하게 나를 깨우시며 돌아오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화 있을 진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과 길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교만한 마음은 스스로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며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의 완악한 마음은 돌과 같이 딱딱해 져서 하나님의 찌르시고 깨우치시는 말씀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영적 무감각증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그들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약한 자들을 외면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보면 먼저 불의한 법령을 만들고 불의한 말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힘이 있으니까 법을 만드는데 법을 계속 만드는 이유가 불의한 이득을 위해 법령을 만드는 겁니다. 백성들에게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의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불의한 법을 계속 만들었습니다. 그런 법들이 결국 서민들에게는 굉장히 불리한 법이 되고 힘이 없고 약한 자들의 것을 빼앗는 법들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교만하고 완악한 지도자들은 이렇게 불공평과 부정 부패를 통해 백성들의 것을 계속 빼앗아가는 불의한 법들을 계속 만드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시며 경고하시는 겁니다. 또한 그들은 그렇게 불리한 법령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인 고아와 그리고 과부들 것을 빼앗고 노략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고아와 과부는 사회에서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대표적 대상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사회에서 어떻게 돌보는가를 하나님 말씀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시험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고아와 과부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불의한 법들을 이용해 가장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노략하는 일을 벌인 것입니다. 이게 지도자들의 교만하고 완악해진 마음 가운데 나오는 구체적인 죄악의 내용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화 있을 진저…”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보내시는 겁니다. 빼앗을 게 없어서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고아와 과부의 것을 빼앗느냐….힘을 가지고 힘없는 자를 눌러 버리며 고아와 과부 같은 가장 약한 자의 것들을 뺏어서 이익을 취하는 이런 일들을 지도자들이 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면 곧 망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법을 만들어 착취하며,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의 것을 빼앗는 악한 일에 대해서 좌시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화 있을 진저…” 앗수르 백성들과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사실 앗수르…라는 강대국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심판하시기 위해 들어 쓰신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선 주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청소하시는 모든 불순물을 태우시는 그때 하나님께서 쓰신 도구가 바로 앗수르였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좋은 도구들을 쓰실 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 악하고 강대국인 앗수르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쓰셨을까? 완벽한 대답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겠지만, 말씀을 비추어 묵상하면서 답을 찾아보자면, 그 당시 죄인 아닌 사람들이 없고, 죄에 쩔은 악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는 내가 대단해서 쓰임 받는 건 아닐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겁니다. 앗수르에게 하나님은 내 진노의 막대기 그 손에 몽둥이의 도구가 잠시 되게 하셨습니다. 심판을 위해 앗수르에게 막대가와 몽둥이가 되게 하셔서 잠시 힘을 맡기신 겁니다. 북 이스라엘을 치는 것을 통해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도록…그렇게 하나님께 도구 됨으로써 앗수르가 굉장한 힘을 얻게 되었는데 그들의 교만과 착각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로서의 힘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내가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앗수르 왕의 입에서 계속 나오는 말이 뭡니까? 내 손이 대단하고 내 지혜가 대단하고 내가 총명해서 내가 이 모든 걸 다 이루었고 다 했다… 모든 관심과 초점이 나에게 있죠. 하나님이 도구로서 주신 힘이라는 것을 철저히 망각하고 교만과 악으로 질주한 게 앗수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구됨을 망각하고 교만과 악에 빠져 버린 앗수르와 그성읍들은 화 있을진저…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세우신 백성인데 하나님의 도구됨을 망각하고 스스로 우월한 줄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교만과 완악함에 빠져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았으며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의 것까지 빼앗는 불법을 일삼았기에 “화 있을 진저…”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를 직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잠시 주신 몽둥이로서의 힘과 능력을 받은 앗수르, 그들도 도구됨을 망각하고 자신의 힘과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며 교만과 악으로 질주하다가 “화 있을 진저…”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를 직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용두사미의 대국이 되는 것이죠. 하루 아침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치시는 나라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도구로 쓰시려고 힘과 능력을 부어 주셨는데 그게 내 힘과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며 도구인건 망각하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에 직면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이고 우리가 앗수르와 같이 잠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망각할 때 결국 내 인생이 앗수르의 길을 가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망각할 때 결국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약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의 것을 약탈하며 살아갔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화 있을 진저…”가 우리와 전혀 무관한 얘기가 아니며 무관한 경고가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늘 겸손하게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이며, 하나님의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임을 잊지 말고, 부어 주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내 것으로 착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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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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